(5)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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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음악 분야의 문제 작가·문제 작품을 선정하는 일은 다른 예술 분야에서처럼 어려움이 있으며 음악만이 갖는 또 다른 힘겨움이 따른다. 「음악 작품의 올바른 평가는 적어도 1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한국 음악계는 연주만 있고 창작은 없다는 치명적인 허점 때문이다.
연주만이 해방 30년이 된 오늘에야 비로소 성년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음악계에서는 작품이 빛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이런 풍토에서 문제작과 문제 작가가 거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작곡 분야가 음악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불과 5, 6년 전부터이다. 그 동안은 작곡된 작품이 있었어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어 문제권 외에 놓여 있었다.
작곡된 작품이란 연주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생명을 지니는데 그 동안은 국내 작품이 거의 연주되지 못했던 것이다. 연주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곡 이외의 곡은 그 동안 악보 출판도 어려웠다.
출판된 악보는 얼마 되지 않고 출판되었더라도 단 한번의 연주로 휴지화 한 불행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김동진(「바이얼린」협주곡38년, 제례악 39년) 김세형(「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곡38년) 채동선(환상곡 38년) 홍난파(동양국의 무곡 38년) 김성태(현악 4중주곡 39년)씨 등의 노력으로 오늘의 창작 붕아가 시작된 것이라 믿어진다(해방 전해인 44년 것으로는 김동진의 관현악곡 『양산가』와 김성태의 『교향적 기상곡』, 김순애의 현악4중주 등이 있다).
해방 후 50년에 현제명의 「오페라」 『춘향전』이 발표됐고 외국에서 지휘와 작곡으로 활약한 안익태가 『한국 환상곡』을 발표, 저명한 세계 각국의 교향악단이 연주해 화제를 일으켰다.
그밖에는 오늘날까지 문제작으로 남는 것이 없고 창작은 예술로서 보다 가곡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생활 음악에 머물러 있었다. 발표된 작품은 창의력이 없는 습작 내지 모방 작품에 불과했다.
1945년 해방, 1948년 정부 수립, 1950년 6·25동란 등의 감격과 비극의 틈바구니 속에 우리 나라 창작계는 생활 음악(국민 가요)만 활기를 얻었을 뿐 예술 가곡·기악곡·기타 다른 영역에서는 침체 바로 그것이었다. 작곡이 전반적으로 다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이후다.
이처럼 어두운 한국 음악사·작곡사에서 윤이상씨가 최대의 문제 작가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59년, 39세라는 만학의 나이로 구라파에 유학, 59년 「다룸슈타트」 현대 음악제에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으로, 60년 「쾰른」 세계 현대 음악제에서 현악4중주곡으로 입선한 이래 계속 문제작을 발표, 서양 음악사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그의 대표작은 『「뤼퉁」의 꿈』 65년, 『예악』66년, 『나모』70년 등이다.
이중 「도나우·에슁겐」에서 발표된 『예악』은 「유럽」 음악계에서 그가 세계적 작곡가로 명성을 얻게 한 곡이다.
그는 「칼·슈만」 출판사가 발행한 『2백년의 음악사』에 지적되어 있듯이 동양의 음악 전통을 서구의 새로운 기법에 성공적으로 결부시켰다. 동양의 정신을 서구에 융합시킨 것이다. 그가 찬사를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이국적이거나 한국적이라는 이유로 칭찬 받는 게 아니라 개성적이고 매혹적인 음악 어법의 구사·대단히 환상적인 음악이라는 이유로 찬사를 받는다.
「킬」국립「오페라」좌에서 초연 된 『요정의 사랑』은 특히 「오페라」의 앞날을 개척한 작품으로 「유럽」 신문의 격찬을 얻어 그의 거장으로서의 앞날은 밝기만 하다.
안익태 씨의 『한국적 환상곡』이 선정된 것은 그가 한국이 낳은 지휘자로 세계 각국을 순회, 유명한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한국적 환상곡』을 연주, 한국을 빛낸 행적 때문일 것이다.
후기 낭만적 색채와 방대한 관현악 구성·민족적 비극을 애국적인 항거 정신으로 작품 속에 투영시킨 점이 작품의 특징이다.
김성태의 『교향적 기상곡』은 44년 완성, 해방 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서울 교향악단에 의해 연주됐었다. 이후 가장 여러 차례 연주된 작품 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우리 나라 민요를 바탕으로 처리, 한국적인 순박한 얼을 토속적인 「리듬」으로 발전시킨 곡이다.
그외 나운영이 11개의 교향곡을 창작하는 의욕을 보였고 『가야금과 관현악을 위한 곡』으로 정회갑이, 『까치의 죽음』으로 정윤주가, 국악 악기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을 구사한 점에서 『예불』로 강석희가, 『정취』로 백병동이, 『세 개의 「플륫」과 타악기를 위한 곡』으로 김정길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외국 음악 사조를 받아들이느라 늘 혼란을 거듭했던 한국 음악계는 이제까지의 창작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젊은 창작가들 사이에서 꽃을 피우게 될 날이 곧 올 것을 기대한다. 【대표 집필 김정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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