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영삼 신민 총재 회견 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새해 1975년은 광복 30년이 되는 해다.
30년은 「한 세대」이다. 우리 민족은 「한 세대」를 분단의 비극 속에서 살아왔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민주주의를 토착화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한 세대」를 마무리 짓는 75년에 가장 큰 민족적 과업으로서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회복하여 민족 통일로 향한 이정표를 새로 세워야 하겠다.
시대적 대세와 국민적 열망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여 사태를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발언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75년의 새해 벽두 박 정권이 선택해야 할 길은 절대 다수 국민의 열망을 탄압적 수단으로 막는 일이 아니라 역사적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중요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정권을 계속해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멋있게 퇴진하느냐 하는 것이다.

<고위 관리 축재가 유신인가>
▲부정 부패 문제=광복 후 30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의 총액만 하더라도 1백50억「달러」에 달하고 박 정권 14년 동안 차관을 도입한 총액만도 70억「달러」에 달하는 데도 오늘날까지 자주 경제의 기반을 닦지 못하고 국민에게 안보 불안을 강요해야 할 정도의 국방 태세에 머무르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근본 원인이 늘 집권자가 장기 집권을 추구하고 원조와 차관을 정권 연장을 위한 정치자금 조달원으로 악용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부정 부패를 조장해 온 때문이다.
오늘의 집권층의 고질화 된 부정 부패와 이 부정 부패 분자와 결탁하여 치부한 특권 재벌에 의해 주도되는 부익부·빈익빈의 특권 부패 경제의 체질도 장기 집권의 부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회견에서도 부정 부패에 대한 한 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소위 「유신」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고위 관리들이 축재해서 어마어마한 농장을 만들고 거기에 호화 별장이나 짓는가 하면 호화 주택을 마련하여 사치와 방종하고 있는 것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이 사람들을 보호 육성하는 것이 「유신」인가 묻고 싶다.

<인권 탄압 즉각 중지하도록>
▲인권 문제=박 정권은 지난 해 긴급조치의 발동으로 민주 회복을 주장하는 민간인을 군사 재판으로 단죄하여 2백여 명을 투옥하여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지난 한햇동안 우리 당을 비롯한 국민의 절대 다수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여 궐기하였고 정부도 석방의 정당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 또는 「반성」 운운하는 구차한 조건을 달아 석방을 지연시켜 오다가 이제 와서는 인권 탄압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구속된 민주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고 집행유예 중에 부당하게 연금 되고 있는 전 대통령 윤보선씨에 대해서도 즉각 연금을 해제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정부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정치인·종교인·언론인·지식인·학생들에 대한 인권 탄압을 이 이상 계속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그 동안의 인권 탄압이 끼친 피해와 국가적인 손실에 대해 깊은 책임을 인정하여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부정 부패는 장기 집권 부산물>
▲자유 언론 문제=IPI 연례보고도 지적했듯이 더 이상 물러 설래야 물러 설 여백이 없는 절박한 벼랑에 선 한국의 언론의 비참한 현실에서 나는 박 정권에 대해 자유 언론을 보장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단정하고 국민이 스스로 지키는 도리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광고주 여러분에 충고한다. 정보 정치의 박해에 굴복하는 여러분의 처사가 본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여러분의 왕인 소비자가 여러분의 처사를 언론 탄압의 공범으로 지탄할 때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루 속히 학원 정상화해야>
▲학원 탄압 문제=박 정권은 교육의 내용에 충실하기 보다 교육제도의 개폐만을 일삼아 교육 행정의 혼란을 되풀이 해 왔다. 거기에다 학생들의 정당한 의사표시를 때로는 「탱크」로 봉쇄하고 때로는 기동 경찰로 탄압하고 종국에는 교수를 교단에서 추방하고 교문을 폐쇄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여 학생들의 요람인 학원이 가져야 할 연구의 자산·발표의 자유·행동의 자유를 박탈해 버렸다.
박 정권은 하루속히 학원을 정상화하고 학생들의 정당한 입장을 선의로 받아들여 민주 회복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대외 의존형 경제 탈피하라>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장 단기 대책=수출 부진과 내수 감퇴로 인한 생산 저하와 기업의 도산 사태·실업자의 급증 등 경제적 난국은 마침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물가고와 중과세는 서민 생활을 최대로 압박하고 근로자 등은 노동 삼권이 박탈 된 채 살인적인 저 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금융의 파탄은 마침내 은행의 자주 기능을 상실케 하고 말았다.
오늘의 경제 위기는 세계적 자원 파동이나 국제적 「인플레」가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뿐 전적으로 그 원인은 박 정권의 개발 독재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 당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여 경제 자활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장 단기 대책을 제시한다.
△단기 대책=①현 연도의 내국세를 대폭 감축하여 세입 규모를 줄이고 세출 부문에서는 소비성 경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 예산 규모를 축소 조정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하루 바삐 국회에 제출할 것.
②재정 투자 부문에 있어서는 중화학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당분간 연기하고 농업 부문·국내 부존자원 개발·중소기업 부문·74년도에만도 13만 명이나 발생한 실업자 구제 대책 및 영세민 취로사업 등에 중점 투자할 것.
③현 연도의 경제 성장률은 3%로 낮추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 10% 안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재정 금융을 절제 있게 운영할 것.
④자원 파동과 물가고에 가장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 대기업과 같은 고율의 소득 표준율을 적용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 무차별 중세의 압박으로부터 구제할 것.
⑤재정 부문에서 「인플레」 및 물가 상승의 선도 요인이 되는 공공요금의 인상, 적자 공채 발행, 화폐 증발에 의존하는 일절의 적자 재정을 불허할 것.
⑥일절의 비생산적인 소비성 전시 투자를 불허하고 이 자금은 중소기업 및 농업 부문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고용 증가 및 식량 자급도를 제고할 것.

<중소기업 중과세 배제돼야>
△장기 대책=①대외 의존형의 산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1차 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는 확대하며 수입 대체가 가능한 식량 및 기타 원자재의 국산화를 촉구한다.
②고도 성장에서 적정 성장으로 전환하여 종래의 근로자(저임금)·농민(저곡가)을 희생하는 축적 방식(성장 방식)을 시정, 균형 복지 경제를 실현할 것.
③관권 경제의 비능률·비합리·자원 낭비 등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하며 금융 자율화와 금융의 민영화를 기할 것.
④현행 개발 세제를 자율 축적 세제로 전환하여 각종 세율을 낮추어 민간기업의 자체 추진력을 배양함으로써 국민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만들 것.
⑤정부는 현 연도부터 대대적인 행정 개혁에 착수, 행정 체제와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여 재정 부문의 소비성 경비를 현재의 70%에서 50%수준으로 낮출 것.

<북괴의 남침 위협 과대 선전>
▲안보문제=박 정권은 수단을 위해 목적을 죽이고 있다. 정부는 연중 행사처럼 북괴의 남침 위협을 과대 선전하여 국민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민으로 하여금 패배 의식과 불안감에 사로 잡혀 해외 도피적인 풍조에 휩쓸리게 하여 국력을 유출시키는 결과까지 가져오고 있다.
안보문제에 관한 한 우리 야당도 초당적으로 협조했다. 우리 국민의 기본권까지 유보해야만 안보가 된다는 박 정권의 안보론은 국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 안보를 노린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특정 정권만이 장기 집권해야 안보가 된다는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미간의 안보 협력 체제는 민주주의와 국제적 사고방식 신뢰가 회복되어야만 꾸준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동남아에서는 반공과 평화의 십자군이 되었지만 계속 아세아의 반공과 평화의 보루가 된다는 긍지를 가지고 안보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남북대화 재개=남북적십자 회의와 남북 조절 위원회를 통한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7·4남북공동성명이 휴지화 되어 남북간에 긴장 상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평화 정착에 모든 노력 촉구>
나는 남과 북이 민족적 양심에 돌아가서 하루속히 남북대화를 재개하여 우선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가 진실로 평화 통일이라는 민족적 비원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 있다면 국민이 일체감을 가지고, 정부의 통일 정책에 믿음을 가지고 성원할 수 있는 민주 체제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힘·지혜 모아 민주화 운동>
▲국민과 당원 동지에의 호소 우리의 민주화 투쟁이 범 국민적 지원 기반을 날이 갈수록 확대해 가자 정부는 나와 우리 당에 대해 탄압을 가하고 있다.
중앙정보부는 우리 당을 분열시키려고 책동하고 모든 사업가와 나의 친구들을 위협하여 나에게 자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가 하면 심지어는 정치 「테러」까지 감행하여 나와 우리 당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온갖 탄압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박해가 오더라도, 어떤 희생이 강요되더라도 75년에는 국민의 힘과 지혜를 집중하여 민주화 운동의 결실을 이루어야 하겠다.
나는 이를 위해 국민의 선두에서 60만 당원 동지들과 더불어 줄기차게 투쟁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새로운 민주 질서가 회복되고 우리 국민의 손으로 국민의 정부를 건설하여 인권 탄압이 없고, 언론 탄압이 없고, 정보 정치가 자취를 감추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학구에 전념하고, 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위대한 민권의 시대를 쟁취하고자 한다.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용기 있는 투쟁을 호소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고「네루」 전 인도 수상의 자서전 『정의의 도전』 가운데 『사람은 그 운명을 피하려고 택한 길에서 곧장 그 운명과 마주치게 된다』는 귀절을 인용하면서 말을 맺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