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회사 어음의 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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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개 단자회사가 인수한 기업 어음 4억7천8백만원과 이들 단자회사를 통해 일반에게 무배서로 매출한 5천5백만원의 기업 어음이 처음으로 부도를 내었다.
그것은 평화 유지라는 기업 어음을 인수한 단자회사가 어느 한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7개 회사나 되며 단자회사를 통해 무배서로 일반에게 판 어음이 부도 사태를 내어 단자회사도 채권을 회수할 길이 막혔을 뿐만 아니라 단자회사를 믿고 기업 어음을 산 일반 고객도 결국 부실 어음을 사서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없게 되었다.
7개 단자회사가 부실기업의 어음을 인수하고 또 이를 일반에게 팔았다는 것은 그 동안의 국내 경제 여건의 악화 등 요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부실기업을 우량 적격 기업으로 오진하였다는 뜻이 되고, 기업 경영의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단자회사의 운영에 근본적인 문젯점이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어떤 특정 단자회사가 이런 오진을 하였다면 모르되 여러 개의 단자회사들이 모두 같은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단자시장 운영 제도 자체의 문젯점을 암시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설령 문제의 기업 어음을 인수할 당시의 기업 경영이 비교적 양호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 같은 기업 진단을 옳은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단자회사들은 어떤 기업 경영의 가까운 장래에 대해서조차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었으며 또 따라서 그것은 재무구조가 매우 부실한 기업 경영의 일반적 상황을 그만큼 과대 평가한 귀결이라고 비판받아도 변명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새삼 문제되는 것은 단자회사가 부실기업의 어음을 무배서로 일반 투자가에게 팔 수 있도록 한 제도 자체인 것이다. 이 경우 단자회사로서는 부실기업의 위험 부담을 지기 싫어 무배서로 어음을 팔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일반적으로는 부실화의 위험도가 높은 기업의 어음일수록 더욱 배서하여 선의의 투자가를 보호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단자회사를 통해 판 기업 어음이 부도 현상을 빚었다는 것은 단순히 투자자의 손실 문제일 뿐만 아니라 모처럼 싹트기 시작한 단자시장 육성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단자회사의 부도 현상은 단자회사가 시중은행의 여신 능력 부족을 메우는데 급급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이상 앞으로도 이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시중은행이 필요한 만큼의 금융을 감당할 힘이 없는 터에 달리 금융을 제때에 변통할 여지가 없는 기업들이 앞을 다투듯 모든 절차가 간편한 단자 금융에 의존하는 형편에서는 항상 이와 같은 위험은 내재적인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자회사가 지니고 있는 이 같은 위험은 제도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며, 단자회사의 금융 한도 설정 및 그 배서 조건 등 전반에 걸쳐 투자가를 보호하기 위한 더 엄격한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자회사의 운용을 시중은행의 금융을 위한 한계 금융에서 벗어나게 하고 금융의 한계와 범위를 재조정하여 독자성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자회사가 시중은행을 대신하여 자신의 힘에 겨운 부실 금융을 계속하는 한 투자자가 입는 위험과 손실은 앞으로 더욱 증대할 가능성이 있음을 미리 경고해 두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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