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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명 사망 … 피로 물든 키예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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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8일 키예프의 시위로 최소 26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다. 얼굴에 피가 흥건한 시위자들이 피신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18일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가장 피로 물든 날이 됐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최소 26명이 숨졌다고 BBC가 전했다. 그중엔 경찰도 10명이 포함됐다. 보건당국도 “241명이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말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상을 중단하면서 시위가 촉발된 이래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것이다. 지금까지 숨진 사람은 8명이었다. 양측은 19일에도 충돌했다. 사상자가 늘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태는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1월 하순 첫 사상자가 난 뒤 당국은 유화책을 썼다. 내각이 총사퇴를 했고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도 조기 총선·대선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14일엔 시위 검거자 전원을 석방했다. 시위대도 이틀 뒤 수도 키예프 시청 등 점거 중이던 관공서에서 나왔다.

18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불길에 휩싸인 진압 경찰들. [키예프 로이터=뉴스1]

분위기가 반전된 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재개하겠다고 밝힌 17일부터였다. 러시아는 “ 약속했던 원조금 150억 달러 중 미지급액 120억 달러를 이번 주중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에 고무된 집권당이 18일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의 야당 측 개헌안을 거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위대는 여당의 지역당사와 경찰서를 습격하거나 의회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당국은 이날 “오후 6시까지 폭력시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당국도 법이 허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최후 통첩했고, 오후 8시부터 시위대의 거점인 키예프의 마이단 독립광장 진입 작전에 들어갔다. 마이단 광장은 지난 석 달 사이 자체적인 병원도, 경찰도, 의회도 있는 자치공화국 비슷한 곳으로 변모한 상태였다.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진 요새이기도 했다. 저항이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19일 새벽까지 극한 충돌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시위대는 마이단 광장을 사수하기 위해 광장을 크게 에워싸며 불을 놓았다. 담요나 타이어, 나무 등 탈 만한 것은 모두 던져 넣었다. 키예프 시청도 다시 점거했다. 야권 지도자인 아르세이 야체뉵 ‘바니키프쉬나’(조국당) 당수는 마이단에서 “정권이 다시 국민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땅을 피로 적시려 한다”며 “우린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국도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야권 인사들은 격렬분자들과 갈라서라”고 말했다. 빅토르 프숀카 검찰총장도 “부상자 1명, 불탄 자동차 1대, 깨진 유리창 하나에 대해서도 난동범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9일 오전 4시 경찰이 다시 마이단 광장에 진입을 시도하면서 양측은 다시 충돌했다. 리비우·테르노필 등 인근 시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극한 대결이 빚어지자 서방 사회는 질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심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EU도 양측 간 대화를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 외무부는 “유럽의 정치인들과 단체가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적 행동에 눈을 감고 합법적 정부에 도발하도록 부추긴 결과”라고 비난했다.

 이런 반응에서 드러나듯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서방과 러시아의 패권이 충돌하는 단층선에 위치한 국가다. 국민도, 영토도 서방파·러시아파로 양분돼 있다. 더욱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을 타며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월 유럽과 협력협상을 진행하다가 러시아의 반발에 협상을 중단했다. 러시아한테 원조 약속을 받은 게 그 무렵이었다. 그 후 서방의 제재 논의가 본격화하자 시위대에 양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가 다시 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7일 러시아 소치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압력 때문이라고 믿는 이가 많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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