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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전공 성적만 보고 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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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구본무 LG회장

LG그룹의 채용 방식이 확 바뀐다. 토익·학점 같은 스펙보다 정보기술(IT) 시대에 맞는 창의성, 그리고 전공 분야의 기본기를 갖춘 이공계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공채 제도로는 LG가 원하는 인재를 찾지 못했다는 갈증 때문이다. 구본무(70) LG그룹 회장이 인재 확보를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19일 L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이 다음 달부터 국내와 미국에서 열리는 ‘LG 테크노 콘퍼런스’에 참석해 직접 헤드헌팅에 나선다. 구 회장은 그동안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했듯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며 “사업에 필요한 인재(人材)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라도 찾아갈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이번 행사에는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실트론·LG화학·LG하우시스·LG유플러스·LG CNS 등 그룹 핵심계열사 8곳에서 500여 명의 연구개발(R&D) 인재를 초청할 계획이다. 전자·컴퓨터 분야뿐 아니라 화학·재료·기계 분야 전공자들도 초청됐다. 또 미주 행사에는 한국 유학생은 물론 현지 인재들까지 끌어오기 위해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가 인접한 샌프란시스코를 행사 장소로 선정했다. 구 회장은 지난해 11월 “LG가 생각하는 인재의 모습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열정과 패기를 갖춘 사람”이라며 “이 같은 인재라면 국적이나 학력·성별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라도 데려온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구 회장이 앞에 나서자 계열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LG전자는 올 상반기 채용부터 소프트웨어(SW) 분야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 전형에 ‘1대1 심층 인터뷰’를 도입했다. 지원자 4~5명과 면접관 4~5명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했던 기존 방식으로는 전공 지식과 실무 능력에 대한 다면적 평가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층면접 시간은 최대 1시간 정도로 기존 일반 면접(약 15분)의 4배 수준이다. 또 전공 이해도 측정을 강화하기 위해 SW 분야의 개념·응용 능력을 묻는 시험도 따로 치르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R&D 분야 대졸 신입사원 선발 때 평균 학점 대신 전공필수 과목 성적을 따지기로 했다. 안승권 LG전자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는 17일 “최근 5년간 신입사원, 특히 엔지니어를 교육해 보니 성과가 출신 대학이나 전공과 별 상관이 없었다”며 “무엇보다 자기 전공에 매진한 학생들이 취업에서 유리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지니어는 매년 LG전자에 입사하는 신입사원 중 약 85%에 해당한다.

 LG화학도 이공계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 ‘입도선매(立稻先賣)’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R&D 석·박사 산학 장학생’ 제도를 통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프로그램 이수자를 바로 과장급으로 선발해 데려온다. 4학년 대상의 엔지니어 육성 프로그램 등 다양한 입도선매 프로그램으로 신입사원 정원의 30% 이상을 뽑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마케팅 인턴십 채용 때는 이공계생에게 영업·마케팅 직군을 개방하는 채용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LG연암학원이 운영하는 연암공업대학에 스마트융합학부(3년제)를 만들어 졸업자 90명에게 LG 계열사 또는 다국적 기업 입사를 100% 보장하고 있다. LG CNS 서경수 부장은 “학점 잘 주는 과목만 들은 졸업생을 뽑아 재교육에 큰 비용을 들이기보다 애초에 좋은 고교생을 직접 선발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시키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LG그룹이 이렇게 채용 절차를 다변화하는 이유는 인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사실 LG그룹의 올해 채용 규모는 1만2000명으로 지난해(1만4500명)보다 17% 줄였다. 그만큼 우수 인재, 특히 이공계열 출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LG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공채를 진행하면서 일률적인 스펙을 가진 학생만 다수 선발되는 문제점이 노출됐다”며 “새로운 채용 방법들을 시도해 봄으로써 창의적이면서도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고른다는 게 그룹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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