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제42화>주미대사시절(6)|휴전반대외교(1)|양유찬(제자 양유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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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임해서 1년3개월간, 그러니까 53년7월 한국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던 휴전협상을 저지하는 외교교섭이 나의 가장 큰 과제였다.
이 박사는 「외교의 귀신」이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휴전반대운동에서부터 반공포로석방, 한미상호방위조약체결까지 이끈 당시의 외교는 확실히 이 박사의 외교수완을 드러낸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는 변영태 외무장관조차 뒷전에서 정부성명이나 발표했을 뿐 대미외교의 전부를 이 박사가 직접 지휘해서 추진했다.
이 박사는 내정보다도 외교에 더 큰 관심을 보였으며 외교에 관한 한 조그만 일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했던 것은 그가 「달러」를 몹시도 아꼈다는 얘기와 더불어 잘 알려진 일이다.
이 박사는 「아이젠하워」미대통령과의 친서교환도 직접 했고 「유엔」군사령관·국무성차관보와도 바로 만나 교섭을 진행했다.
사실 휴전을 전후한 대미외교는 사안도 증대했다.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국이 우리측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인 51년6월23일 「말리크」주 「유엔」소련대표가 정전협상을 제의했고, 뒤이어 소련정부가 「커크」주소 미 대사를 통해 휴전협상을 정식 제의함으로써 미국은 즉각 이를 받아들여 이해 7월부터 정전회담이 벌어졌다.
협상은 「트루먼」대통령이 「리지웨이」주한「유엔」군 총사령관에게 『현지에서 공산 측과 휴전교섭을 벌이라』는 긴급지시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보다 앞서 「애치슨」국무장관은 『공산군이 38선 이북으로 철수하여 다시 재침하지 않는다는 적절한 보장만 받는다면 미국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휴전협상은 「아이젠하워」대통령이 들어 서고부터 본격화했다. 『내가 당선되면 한국 전쟁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한 「아이젠하워」대통령은 장기화·소모전화하는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북진해서 통일의 비원을 달성하려고 생각했던 이 박사의 강경한 휴전반대·한국민의 반대궐기대회로 한·미간엔 긴장과 대치의 국면이 자주 발생했다.
미국에 대해 『너희가 싸우기 싫으면 우리 혼자라도 싸우겠다』고 호통치며 휴전에 반대한 이 박사의 태도는 무쇠처럼 강경했다.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에 의해 휴전회담 한국측 대표로 임명된 최덕신씨(전외무장관·천도교령)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강경론」를 알 수 있다.
회담대표로 임명받은 최소장이 경무대에 들어가 『제가 이번에 휴전회담대표로 나가게 된 최덕신입니다』고 신고했다. 그러자 이대통령은 노기를 띠고 『무슨 놈의 대표냐』고 했다.
최 대표는 『「유엔」군사령관의 임명을 받았지만 저는 한국장교입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국가원수의 지시를 받으러 왔습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이 박사는 노기를 풀고 『휴전회담을 하려면 한국사람이 수석대표가 돼야 옳지, 미국사람이 수석대표가 되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말했다. 『우리를 제쳐놓고 미국사람 마음대로 정전을 한다, 될 얘긴가. 이것이 항복이지 어디 정전이야. 어떻게 해서든지 정전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해』라는 것이 이 박사의 자세였다.
이 박사의 휴전반대결의는 이처럼 강경했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미국의 방침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덜레스」국무장관과 「로버트슨」극동 담당문관보 등을 자주 만났다. 그러고는 『국토가 양단된 채 휴전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한국인이 선택하는 정부하의 재통일을 보장하지 않는 한 어떤 휴전도 거부한다』는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을 밝혔다.
나는 곳곳 집회에 나가 공산주의자와의 타협은 패배를 초래한다고 연설도 했다.
거의 대사관사무실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이 강연을 자주 했다.
54년4월 중순엔 이 대통령으로부터 「아이젠하워」대통령을 찾아가 『북한에 중공군이 주둔하는 채 휴전이 성립된다면 한국군을 「유엔」군사령관 지휘하에서 철수시키겠다』고 전하라는 훈령을 받았다.
국군의 작전지휘권은 「6·25전쟁」직후 이 대통령이 「맥아더」원수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유엔」군사령관에게 위임돼 있었다.
이 지휘권을 회수하겠다는 것은 「유엔」군측이 체결할 휴전협정의 적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로부터 이 같은 이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은 「아이젠하워」대통령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정전되더라도 미국의 대한방위노력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 즉각 동경에 있는 「클라크」「유엔」군 총사령관을 한국에 보내 과연 이대통령이 국군지휘권을 회수해갈 생각인지를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이대통령은 혹시 내가 미국친구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까 해서인지 『내가 뒷받침하고 있으니 겁내지 말고 휴전반대방침을 굳세게 밀고 나가라』고 자주 격려의 전보를 보내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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