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유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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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류사상의 큰 비극을 들어보면 모두가 전쟁이다. 그리고 어떤 잔학한 전쟁이건 그 핑계는 모두 같았다. 그 핑계가 다름 아닌, 전쟁과는 정반대의 개념인 평화를 위한다는 것이니 더욱 어처구니없다. 「에라스무스」가 『전쟁은 짐승을 위해선 있을지언정 인간을 위해선 있을 수 없다』고 외쳐봤지만 여전히 전쟁의 주역은 짐승 아닌 인간이었다.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전쟁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다. 다만 파멸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개인에게 칼부림을 당하여 하나의 목숨이 없어지면 세상이 들끓지만, 전쟁으로 1만명이 죽었다면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아무리 「컴퓨터」를 만든 머리지만, 수의 개념에서는 인간은 커다란 맹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 맹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일이 있다. 태평양전쟁 중에 일제에 끌려가서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유골 9백11위가 어제 무언의 귀국을 하였다. 대개 연고가 있는 유골인데 광복 29년만에야 돌아오게 되었다.
10여년 전 한·일 국교의 재개를 서두르고 있을 때, 이를 추진하던 층이나 반대하던 층이나 일본을 보는 눈은 달랐겠지만, 바라던 바는 일반이었다고 믿고 싶다. 즉 일본은 한국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진정으로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이 가다듬어져야 하며, 한국은 일본에 대한 구원에만 매일게 아니라 그런 관계가 되풀이될 수 없다는 자신을 가졌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관계란 정치·경제적인 면에 앞서 국민감정의 문제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한·일 협정을 반대하던 층의 생각은 일제36년 가운데서도 특히 뜻 없는 전쟁에 끌려가 죽은 혈육의 문제조차 그대로 남겨둔 채 어찌 그들과 손을 잡을 계제가 왔다고 보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전후의 처리문제에 있어서 유골의 환국문제에 차관의 몇 분의 1이나마 애써왔다는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 문제의 일부나마 해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제1차의 유골환국은 어떤 민간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있다. 한편 아직도 동경의 우천사에 남아있는 1천1백71위의 원혼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대답하면 옳을지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인명을 금전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한 일 양국정부에서 지급된 향전을 보아도 성의 어린 처사였다고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듣기 거북한 후문마저 따르고있다. 자애 없이 어찌 타애를 바라겠는가. 압박에 못 이겨 끌려가 목숨을 잃은 백골이나마 고국에 몰아와 묻히게 하는 게 독립된 조국의 최소한의 임무며 생명을 존엄히 여기는 길이 된다. 누가 일으킨 전쟁이든 간에 그 뒤를 어떻게 거두느냐에 따라 평화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저울질하게 된다. 정부대표 몇 사람이 위령제를 지냈으니 살아남은 우리로서는 송사의 길을 다했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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