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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테러 변수 … 시험대 오른 엘시시 대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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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7일 한국인 관광버스 테러 현장을 조사 중인 이집트 경찰이 뼈대만 남은 버스 의자와 찢겨진 천장을 둘러보고 있다. [타바 AP=뉴시스]

한국인 관광버스 폭탄테러를 저지른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 안사르 바이트 알마크디스(예루살렘의 수호자들)가 18일(현지시간) “이집트 내 모든 관광객은 20일까지 떠나라”라고 위협했다.

 안사르 바이트 알마크디스는 이날 지하드 웹사이트에 공식 성명을 올려 지난 16일 타바 검문소 관광버스 폭발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관광객들이 오는 20일 전에 이집트를 떠나지 않으면 다음 공격 타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명은 이것이 “국고를 약탈하고, 국민의 이익을 전혀 돌보지 않는 배신자 정권을 상대로 한 경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이집트의 주요 경제엔진인 관광산업에 타격을 입혀 과도정부를 흔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안사르 바이트 알마크디스가 추가적인 외국인 공격을 예고하면서 1990년대 이집트를 흔들었던 반정부 연쇄 테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치하의 과격 이슬람단체들은 군·경찰에서 민간인으로 타깃을 옮겨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다. 97년 외국인 58명과 이집트인 4명 등 62명이 숨진 룩소르 테러가 대표적이다. 이를 기점으로 시나이반도에선 군소 무장조직들이 활거하면서 2004~2006년 사이 140여 명이 테러에 희생됐다.

 테러 불안은 오는 4월로 예정된 이집트 대선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의 대세론에 타격이 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에 앞장선 엘시시는 현재 이집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다. 외신이 ‘엘시시 앓이’라고 칭할 정도로 티셔츠·머그컵 마케팅 등이 한창이다. 지난 11일 엘시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집트 운명을 책임지려는 걸 높이 평가한다”며 사실상 차기 대통령으로 대접했을 정도다.

16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를 들고 연호하는 지지자. [로이터=뉴스1]

  이집트는 지난해 4분기 실업률이 13.4%에 달했다. 특히 15~29세 청년 실업자가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과도정부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깊은 침체에 빠진 이집트를 일으켜 세울 지도자로 엘시시를 치켜세운다. 엘시시도 거듭 ‘테러와의 전쟁’을 맹세하며 사회 안정을 약속해 왔다.

 그러나 잇따른 테러로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면 엘시시에게 책임론이 갈 수 있다. 카이로의 아메리칸대학 경찰학과의 아시라프 엘 셰리프 교수는 “최근 급증하는 과격 테러는 이집트 경찰력의 정보 실패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엘시시를 필두로 한 군부 세력이 실제 치안에선 무능력하다는 지적이다. 대테러 경찰관 출신인 보안자문가 이하브 요세프 역시 “이번 관광객 타깃 테러는 반정부 투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 많은 테러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시나이 반도 테러가 엘시시 대권 장악의 시험대가 됐다”고 요약했다.

 하지만 역으로 이것이 엘시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공포심리를 심어줄 수도 있다. 특히 접경국가인 리비아·수단·이스라엘로부터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와 무장군벌들이 계속 침투하는 상황에서 무바라크 정권을 겪었던 장년층은 오히려 군부 통치가 필요악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게다가 출사표를 던진 후보 면면이 엘시시의 경쟁자가 되지 못한다. 군 참모총장 출신인 사미 아난은 무르시의 군보좌관 출신으로 사실상 무슬림형제단 후보자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3위를 차지했던 구국전선 대표 함딘 사바히는 엘시시 쿠데타 이후 그를 ‘구국의 영웅’이라 치켜세웠다. 이번 출마도 차기 총리 자리를 보장받고 들러리를 서는 것이라는 의혹이 파다하다. 그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17일 “혁명을 주도했던 젊은 층이 실제 권력을 장악한 장년층과의 깊은 세대 격차를 느끼고 좌절하고 있다”고 이집트의 딜레마를 전했다.

 이번 버스 테러는 접경국가인 이스라엘에도 경고등을 켰다. 주변국 시리아·요르단이 만성적인 분쟁 상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에선 연 180만 명에 이르는 크리스천 방문객 상당수가 시나이반도를 통해 육로로 입국한다. 성서에서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해 이스라엘에 이르는 ‘출애굽’ 루트를 재현하는 목적도 있다. 이번에 희생당한 충북 진천 중앙교회 교인들도 이 순례 코스를 거쳐 타바로 향했다가 변을 당했다.

 이스라엘의 대테러 전문가 마지 아비브 오레그는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테러 장소가 접경지대라는 점에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쪽에 타격을 줄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나이반도에서 암약해 온 지하디스트들이 상대적으로 침투가 어려운 이스라엘 대신 이집트 쪽 접경지역에서 건재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테러는 시나이반도와 이웃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까지 나비 효과를 드리울 전망이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테러 토벌을 명목으로 이집트가 가자지구 연결 터널의 감시와 파괴를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단체 하마스와 주민들은 시나이반도와 연결된 밀수 터널을 통해 생필품 등을 들여왔다. 그러나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이 터널을 통해 군수품을 반입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이집트는 최근 일대 터널의 약 95%에 해당하는 1200여 개를 파괴했다. 신문은 “하마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당국은 버스 테러를 저지른 과격세력과 하마스의 관계를 의심한다”고 덧붙였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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