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의 소방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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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에는 대전의 중앙시장에 또 큰불이 났다. 올해엔 가을이 깊어 가면서 보름이 멀다고 큰불이나 이번 겨울을 다 날 때까지는 또 어디서 무슨 큰불이 일어날지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큰불만이 불이 아니다. 큰불에 가리워서 작은 불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작은 불이 큰불이 되고야 말 것이다. 한데도 이 작은 불이 일어날 요인이 도시의 비대화에 따라 자꾸만 늘어가고 번져가고 있다.
도시가 커진다는 것은 커진 만큼 화재대상물이 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도 이 늘어나는 화재대상물에 상응한 소방시설과 소방인원이 따라가지 못하고있다. 토끼뜀의 도시화에 거북이 걸음의 소방행정이 절름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대도시주변의 신흥주택가나 새로이 도시에 편입된 지역들은 일종의 화재무방비상태를 빚어내고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소방력과 당국의 관심은 잇단 도심지의 대 화재에만 쏠림으로써 변두리의 소방문제는 더욱 소홀히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도시의 변두리지역이야 말로 그 내화성이 약한 건축물의 구조나 소방도로도 없는 사정으로 보아 발화·인화요인을 잠재적으로는 가장 많이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데도 소방관서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서 불이 나게 되면 소방차가 도착하는 동안엔 이미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초기진화단계가 지나버려 사실상 소방혜택을 기대할 수가 없다. 또 설사 소방관서의 확충도 소방도로가 없으니 화재현장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불은 이웃집으로 번져 작은 불이 큰불이 되기 일쑤인 것이다.
한마디로 도시계획당국자의 태만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변두리 지성에는 주택들이 마구 무질서하게 들어설 수 없도록 소방도로 예정구획선만은 그어놓아야 할 것이다.
또 소방관서의 확충도 시급한 문제다. 서울시의 경우 인구 1백50만명 당시 4군데 있었던 소방서가 인구 6백40만명으로 팽창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군데도 증설하지 않고 있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뛰어가는 토끼가 낮잠을 자는 것도 시원치 않은데 이건 거북이 걸음으로 기어가는 소방행정이 낮잠을 자고있는 격이다. 소방관서는 늘려야 되고, 인원·장비도 보충해야 되고 소방도로도 만들어야하고 그러자면 거기에 대한 예산도 어디서든 염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불은 나기 이전에 막는 것 이상의 상책은 없다. 변두리 지역의 주택가나 기타 소방대상 건물에 대한 비상점검을 서둘러 실시해야 되겠다. 특히 화인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누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용량이나 규격을 무시한 배전 시설을 철저히 가려내야 될 것이다.
개인주택이나 공공건물이나 준공검사가 제대로 되었다면 좀처럼해서는 불이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주 불이 나는 것은 눈가림 식의 준공검사가 빚은 허점을 불과 같이 훤하게 보여준다. 특히 소방도로의 확충계획도 빨리 세워 연차적으로 실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부쩍 늘어가는「아파트」·「맨션」등의 집단주택에 대해서도 소방점검을 실시해야 되겠다. 주택공사가 세운 한강변이나 반포와 같은 대단지「아파트」촌에도 단 한군데의 소방파출소조차 없다는 점도 빠른 시일 안에 대책이 있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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