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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교황 어머니, 왜 무릎 꿇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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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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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내가 신학교에 입학할 때, 어머니는 신학교까지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어머니는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로 직접 다투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가끔 집으로 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보러 신학교로 오시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앙을 믿고 실천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모든 일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제 서품식 후 나의 첫 강복(降福·하느님이 복을 내림) 기도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누구의 이야기냐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한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참 가슴이 아립니다. 왜냐고요? 어머니의 마음이 한지에 먹 스미듯 번져오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학생 때 오른쪽 폐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장남을 얼마나 애틋하게 바라봤을까요.

 교황의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사제가 되는 일은 또 달랐습니다. 그건 내 몸으로 낳은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일이니까요. 또 아들이 독신으로 살아가는 광경을 평생 지켜봐야 합니다. 비단 교황의 어머니만 그럴까요. 우리 주위에도 자식이 신부가 되고, 수녀가 되고, 스님이 되고, 교무가 된 어머니가 많습니다. 그 모든 어머니의 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지난주 서울에서 사제 서품식이 있었습니다. 가톨릭 신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독신 서약을 하고 사제가 되는 날입니다. 이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뻗어 땅에 엎드립니다. 그렇게 한없이 낮아지기를 서약합니다. 뒤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들의 눈을 유심히 봅니다. 대부분 웃음과 울음이 공존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눈이 울고 가슴은 웃습니다. 또 어떤 어머니는 눈은 웃지만 가슴은 웁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22년간 홀로 키운 무녀독남 외아들의 사제 서품식에 온 어머니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아들도 알고 어머니도 압니다. 어머니의 노년을 책임지기 힘들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남은 세월, 어머니는 더 외롭게 살지도 모릅니다. 각시 없는 자식의 결혼식. 서품식에서 그 어머니의 눈은 웃고 있었습니다.

 서품식이 끝나면 갓 사제가 된 이들이 달려와 강복 기도를 합니다. 사제의 첫 강복 기도는 속된 말로 “기도빨이 좋다”고들 합니다. 그걸 주로 어머니께 바칩니다. 아들 앞에 어머니는 무릎을 꿇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머리에 두 손을 올립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대신 사제의 어깨가 가끔 들썩입니다.

 교황의 어머니도 그랬더군요. 내놓고 충돌하진 않았지만 어머니는 원치 않았습니다. 신학교 입학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위를 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신학교로 면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사제가 되던 날, 서품식에 갔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된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교황의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누구일까. 그건 어머니가 아닐까요. 그 어머니가 대체 어디를 향해 무릎을 꿇은 걸까요. 그건 아들이 아니더군요. 사제가 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본능입니다. 그 본능보다 더 깊은 본능, 그 본능보다 더 근원적인 본능. 어머니는 그걸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들이 아니라 신(진리)을 향해 무릎을 꺾었던 겁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합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우리는 모두 그런 인간이라고.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