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신민 총재 질문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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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면서 계속>
◇중-소와의 관계 개선을 주장한다=자유우방인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저지하기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는 중공이나 소련과의 관계개선의 길을 모색하여 이를 실현시키는 적극적인 평화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나는 통일을 위해서 남북분단의 비극을 국제사회에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지구상의 어디든지 갈 것이며 어떤 사람과도 만날 용의가 있다는 것을 이 기회에 밝혀둡니다.
◇외교고립의 원인=오늘의 엄청난 외교적 고립이 과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외교는 내정의 연장입니다. 내정의 잘못이 외교의 고립을 자초했다고 거듭 지적하는 것입니다. 지난 4반세기에 걸쳐 한국외교의 기둥이 되어 온 한-미 관계에 최근 불협화음이 표출되고, 한-일 관계 또한 본질적인 갈등이 계속됨으로써 한국외교의 현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미군철수는 북괴남침의 요인이 될 것이고, 군원 삭감은 국민부담의 과중과 국방력의 약화를 가져올 것인데 이러고서 무슨 외교를 어떻게 했다는 말입니까?
또 대일 의존의 경지를 넘어 예속의 상태까지 몰고 온 정부는 한-일 관계의 구조적인 본질을 덮어둔 채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균형경제로 방향을 전환하라.=오늘의 우리경제는 암담한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첫째로 수출이 벽에 부닥쳤습니다.
둘째로 국제수지 적자의 극대화 현상입니다. 금년도 45억 달러 수출목표에 65억 달러의 수입이 불가피한데 20억 달러의 엄청난 국제수지의 적자를 무엇으로 메우느냐가 문제입니다.
세째는 식량위기입니다.
지난 68년부터 73년까지 식량 도입 량이 무려 1천5백30만t에 21억 달러에 달하고 있는데 국제시세의 폭등으로 수입식량으로 이를 메우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네째는 감당할 수 없는 대외부채의 격증입니다.
다섯째 생산의 부진과 기업의 도산 사태입니다. 전국적으로 기업 도산 율이 50%에 이르고있고 이 결과 집단해고·휴직·감원 사태는 그나마 최소임금에 시달려온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만들어 거리에 내쫓고 있습니다.
여섯째 연율 50%라는 세계 최고의 물가고에다 극한적인 세금공세까지 겹쳐 서민의 생활고는 그야말로 도탄에 빠져있습니다.
일곱째 금융의 파탄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동안의 정부의 개발정책이나 경제운영방식의 잘못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당초부터 개발전략의 방향을 잘못 잡은 데다가 경제를 정치권력에 예속시키고 일체의 정책과 가용자원을 특정의 전시적 부문에만 집중하여 고도성장을 위장하고 경제개발을 이권의 배분과 정치자금의 조달방편으로 이용해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경제자체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자율경제」와 앞에서 지적한 모든 불균형 상태를 시정하여 균형을 되찾게 하는「균형경제」로 지향하도록 제창하는 바입니다.
◇사회환경도 고착되면 썩는다=오늘날 우리사회는 지도층의 부정부패, 국민대중의 누적된 욕구불만, 불신풍조 만연, 그리고 청소년들의 가치관의 오도 등으로 말할 수 없는 혼란의 시대에 빠져들었습니다.
집권층의「무한부패와 권력층과 부유층의 무한사치」와「무한낭비」가 빚어낸 금권만능 사상의 소산입니다.
물이 괴면 썩는 것처럼 사회환경도 고착되면 부패합니다.
◇언론자유 문제=언론인들은 언론자유가 없다고 말할 자유조차 없고 감시해야할 언론이 오히려 감시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부는 또 국내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신문이나 잡지를 배포함에 앞서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모조리 삭제해버리니 이것이야말로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우민정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언론강압을 한다고 해도 국민은 결국 알 것은 알게되고 느낄 것은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차제에 용단을 내려 중앙정보부가 관장하던 대공사찰 업무는 검찰이나 경찰로 넘기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근로자에게 생존권을=정부의 저임금 정책과 노동운동의 금지로 백만 근로자들은 인간이하의 노동조건과 저임금으로 생존권마저 위협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계점을 넘어선 근로자들의 불만은 최근 현대조선소 사건에서 보는바와 같이 폭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의 원성이 결국에 가서는 누구를 향해 폭발하겠느냐 하는 것을 정부는 깊이 통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생계비를 기준으로 임금을 현실화하고 노동운동을 자유화할 것을 촉구합니다.
◇난국 타개의 길은 개헌=이상에서 지적한 국내외적인 난국을 극복하는 길은 민주주의로 회복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이것만이 국민의 실의와 울분을 희망과 활기로 바꿀 수 있으며 악화된 국제여론과 민주우방들의 우 리에 대한 불신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 시점에서도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 듯 국면을 호도 하거나 사태를 미봉 하려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마침내는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를 자초하고 말 것입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민주화로 향한 민족적인 도를 걷는다면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는 물론 우방과의 우호적 협력 관계도 다시 강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제의합니다. 개헌문제에 대해서 국민의 대표기구인 우리국회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국회에다「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여야 공동으로 구성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하는 바입니다.
여-야가 이 공동위원회를 통해 진지하게,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민당으로서는 첫째,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책임제. 둘째, 대통령의 임기 및 재선 횟수 단축과 세째, 행정·입법·사법 삼권분립의 완전 보장. 넷째,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군인과 경찰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 제도화 등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맺는 말=우리는 자유야말로 공산주의에 이길 수 있는 최강의 무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힘의 정치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때 그곳이 바로 공산주의의 온상이 된다는 실증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공산국가에는 자유는 없어도 빵은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국가에는 자유도 없고 빵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의 온실이 되는 요인입니다.
이 정부가 아무리 국민의 열망을 힘으로써 억누르려고 해도 우리국민은 그것을 끝내 관철시키고 말 것입니다.
나는 결코 폭력에 의한 혁명적 수단은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끝내 다수 국민의 요구를 억누르고 지금 이 상태를 고집한다면 또다시 정치권 밖에서 국민의 민주적 요구가 전개될 것이고 그때는 나와 우리 신민당도 민주국민의 대열의 앞장에 서서 투쟁할 도리밖에 없다는 것을 선언해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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