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25년(상)국제 무대의 거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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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이멜다·마르코스」「필리핀」대통령 부인의 북경 방문은 탈 문혁과 함께 활발히 진행되어온 중공외교의 성격을 한층 뚜렷이 드러내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중공과「필리핀」간의 국교정상화 작업이 완결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풍길 정도로 중공 지도자들이「이멜다」를 맞아 보여준 적극적인 자세는 무엇보다도 70년대 초기부터 전개되어온 중공외 교정책이 적어도 그들의 안보와 직결된「아시아」지역에 대해서는 실리위주의「수정노선」을 걷고 있다는 가설을 재확인해 주었다. 「필리핀」은 현재 명목상으로는 모택동 사상을 신봉하는「신인민군」을 섬멸하기 위해 2년째 계엄령하의 통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반 독재·반정부 야당세력과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남부 회교도 집단에 대해 탄압을 실행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정권에 대해 중공이 우호를 다짐하고 국교를 맺으려는 적극적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표방해온『전세계「인민해방 전선」에 대한 강력한 지원』노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공의 태도는 이미 71년 3월 인-「파」전쟁 때「인민해방전선」의 틀에 들어맞는「방글라데시」를 오히려 비난하면서 그들의 외교적 맹 방인「파키스탄」을 적극 지원했을 때, 그리고 공산「게릴라」를 탄압하는「말레이시아」에 대해『중공은 혁명을 수출할 의사가 없다』는 다짐을 주면서 국교를 맺었을 때부터 일관성을 띠기 시작했었다.
이와 같은 수정은 물론 방법의 범주에 국한될 뿐 원칙의 수정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공 지도자들의 이념적 작품에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상의 수정과 원칙의 고수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이념적 갈등을 중-소 분쟁에서 정통을 내세우는 중공으로서는 큰 희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희생을 무릅쓰고 외교정책의 수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군의 월남 철수로 생겨난「아시아」지역의 군사력의 공백을 메움에 있어 소련의 기선을 제하고 중공의 전통적 영향권을 되찾으려는 조바심에서 연유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69년「아시아」집단 안보 체제 안을 제의한 소련이 인도와의 관계강화를 다진 이외에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한데 비해 중공은 그 동안 동남아지역에서 급격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닉슨」의 북경방문 충격은 일본의 대 중국 정책을 급선회시켜 27년간의「전쟁상태」를 종결시키고 외교관계를 맺게 했다.
연이어 호주와「뉴질랜드」가 미-중공 화해 여파를 타고 북경과 수교했다.
이와 같은 사태발전은 중공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관계 개선을 위한 촉매가 된 것 같다.
동남아에서의 미국 세 퇴조와 때를 같이하여 영국군의「수에즈」이동 철수가 겹쳐 소련의 인도양 진출현상이 두드러지는 한편 일본의 동남아 경제지배에 대한 우려와 특히「에너지」파동 이후 일본의「말라카」해협 강점 가능성 설이 대두했다.
중공과 ASEAN은 이 두 가지 점에서 이해를 같이하게 되므로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소련이 인도와「방글라데시」를 발판으로 힘의 공백 지역이 된 인도양에 진출, 대 중공 봉쇄 망을 구축하려했다.
이에 중공은「스리랑카」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인도양 중립화 안과 인니와 말련의「말라카」해협 봉쇄 수역안을 각각지지 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호의를 얻었다.
또 석유충격 이후 어려워진 경제적 난국을 벗어나는데 중공에서 활로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ASEAN지도자들의 희망과 이에 대응한 중공의 통상 증대 책과 원유 공급 약속도 쌍방의 화해 촉진에 기여할 가능성은 크다.
「필리핀」의 경우 이미 중공이 10대 수출 대상 국으로 등장했고「말」련도 중공에 고무· 주석 등을 대량 수출했다.
최근「필리핀」대통령 부인「이멜다」여사가 북경을 방문, 원유공급 약속을 받은 것이라든지. 이에 앞서 태국이 북경으로부터 원유 공급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은 동남아 중공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중공은「라자크」「말레이시아」수상에게 동남아에서 외세가 완전 철수한다면 동남아 중립 안을 밀겠다고 약속하여 동남아 국가들과의 수교는 단지 시간문제로 남겨둔 것 같다. 왜냐하면 쌍방 화해의 가장 저해요인이던 반정부운동을 중공은「말레이시아」와의 수교 시 혁명의 자력갱생에 입각, 국내문제로 취급해 버텼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주목할 중공의 대외 정책은 한반도에 있어 미군 주둔을 묵인하는 것 같은 태도이다.
중공은 7l년 10월25일「유엔」가입 이후 3년 동안 30여 개국의 수뇌들을 북경에 초청하고 새로 35개국과 수교하는데 성공, 현재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99개국에 이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북경을 다녀간 국가 원수는「브메디엔」등 주로 제3세계의 영도자들이지만 「닉슨」·「다나까」「퐁피두」등 자유세계 지도자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해 볼 때 중공은 새로운「공적1호」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통일전선 식의 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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