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기치든 지 한달|「김영삼 체제」속의 신민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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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순항 막는 역기류 아직 남아>
신민당의 김영삼 호가 출범한지 한 달여. 선명의 돛을 달고 지금까지는 비교적 순항했다.
그 동안 김 총재는 정무위원에서부터 중앙 사무기구의 부·차장에 이르기까지 중앙상무위원만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당직을 짰다. 그가 당권을 잡은 후 야당에는 선명론이 구호처럼 나돌아 한동안 잊혀졌던 「야당적 자세」가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당직 인선에 대한 일부 불만 야당의 새로운 자세에 대한 타성적 회의 때문에 순항을 방해할 당내 역기류 조짐이 가셔진 것은 아니다.
이번 90회 정기국회는 김영삼 체제의 전도를 좌우할 시험대로 봐야 한다. 김 총재의 선명야당론이 현실의 벽을 뚫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느냐, 그야말로 「종이 호랑이」에 그치느냐가 판가름되겠기 때문이다.

<총무단의 협상방식 달라져>
김 총재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개헌론을 제기, 대여 강경자세를 분명히 했다. 그가 들고 나와 야당의 유행어가 된 「선명성」은 당직 인선·발언자 선정 등 모든 면에 기준으로 통용됐다. 선명이 강조되다보니 선명 경쟁이 일어 김 총재보다 한발 앞서가려는 「그룹」도 태동했다.
신민당의 선명노선은 오는 10월7일 김영삼 총재의 대표 질문을 기해 천명될 예정.
김 총재는 대표질문의 기조를 민주주의 회복과 유보된 언론 및 야당 정치활동의 자유회복을 위한 개헌촉구에 두겠다고 했다. 정치분야에서는 이미 국회에 건의안을 제출한 정치범 석방문제·비상사태 선언 및 긴급조치 완전 해제·정치보복 지양에 관해 언급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이 안보와 외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 할 예정이다.
선명이 강조되고 유화를 배척하다보니 원내 총무단의 대여 협상방식도 달라졌다.
야야 협조를 위해선 여당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던 과거에 비해 김형일 신임총무는 고집스럴 정도로 도사리는 형편. 가장 중요한 의사일정 협의도 부총무 선에서 사전조정을 해 원내대책위를 거친 뒤 최종결정 단계에서만 여당총무와 대좌했다. 여당사람과 은밀히 어울리는 일이 없어 의혹을 사지 않고 여당측이 호락호락하게 대하지 못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장점은 원내전략 구사에 있어 기동성을 잃는 단점도 될 수 있어 일부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야당의 태도가 강경해져서 만은 아니겠지만 요즘 여당의 대야태도는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의사 일정 협상에서 야당총재의 대표질문을 넣어준 것이나 신임장관과 서울시장이 야당 총무단에 인사간 것이 그 한 예로 꼽힌다.

<새벽 1시전 잠자리 못 들어>
당수가 된 뒤 김영삼 총재의 일과는 무척 달라졌다. 오전7시가 되기 전부터 당원을 비롯해 손님이 밀려들기 때문에 6시면 일어난다. 당수 선거운동 종반부터 지금까지 새벽 1시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거의 없다고.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20∼30명의 방문객을 만나고 국회가 없을 때는 당사로, 국회가 열릴 때는 국회 신민당 총재실로 출근한다. 요즘은 정무회의·당직자회의·원내대책회의·정책회의 등 매일 한 두 번씩 회의를 주재한다.
총재 취임 후 「에릭슨」미 대사대리 「랑디」불 대사의 초청에 응했고 12번(평균 사흘에 한 번씩)이나 외국기자와 회견했다.
회견한 기자는 미국의 「뉴요크·타임스」「워싱턴·포스트」「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스위크」「타임」 UPI, 독일「텔리비젼」, 일본의 조일 매일 독매 NHK와「홍콩」의 「이스턴·이커노믹·리뷰」등.
청원객도 적지 않아 민청학련사건 구속학생 어머니 대표 등 4차례 청원객을 만났다.

<상무위원 선정에 큰 관심>
김 총재의 새 체제 인선작업은 고 유진산 전 총재에 비해 퍽 민첩하다.
그러나 정무위원 인선에서 신도환·정헌규·한건수·박해충씨가 빠져 내연하던 불만은 36명의 부국장 및 부·차장 인선에 김 총재 직계가 23명이나 기용됐다해서 공개적으로 터졌다. 김 총재와 함께 범주류를 형성하는 고흥문 정무회의 부의장마저 불만을 표시.
이러한 불만은 인사의 폭이 김 총재「라인」에 치중되었다는 반발에서 표출되었으나 다분히 상무위원 인선을 앞둔 포석이 아니냐고 보는 이들도 있다. 상무위원은 당연히 전당대회대의원을 겸하기 때문에 당권유지와 도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는 상무위원 선정을 총재가 3명의 당권 경쟁자 및 전당대회 의장과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위임했다. 우선 「협의한다」는 의미부터 「합의와 마찬가지」란 견해와 「의견을 듣는데 불과하다」는 이견이 있다.
지난 20일 상무위원 선정 협의모임에서 정해영씨 등은 선정「케이스」84명중 40%를 총재가, 60%를 나머지 4명이 l5%씩 나눠 선정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우선순위를 붙여 명단을 내면 이를 참작해 결정하겠다고 했다는 것. 그 직후 발표된 부·차장 인선 불만이 겹쳐 1주일이 넘도록 아무도 명단을 낸 사람이 없다. 자칫 상무위원선정 문제는 범주류 내부의 틈을 만들고 비주류를 결속시키는 그 「불화의 불씨」가 될 조짐이다.

<당내 서클활동 다시 활기>
전당대회 직후 한 때 잠잠하던 당내 「서클」활동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전당대회에서 김 총재를 지지했던 정일형씨를 중심한 화요회의 발족은 특히 각파의 관심거리. 화요회의 구성은 정일형 김원만 정헌규 박한상 박영록 한건수 한병채, 최성석 유제연 천명기 의원 등 다채롭다. 김 총재측은 이들이 비주류편에 서리란 우려에서, 또 이철승계와 신도환계에선 자파세력을 잠식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당권 경쟁자중에는 범주류를 구성하고있는 고흥문씨가 별도 계파 유지를 공언해 왔고 이철승씨는 「세미나」와 계파 모임을 갖는 등 좌절을 딛고 일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정해영씨는 「버스」를 전세 내 운동원과 수락산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이러한 복잡한 계파와 당직 인선에 대한 불만이야말로 신민당 김영삼 호의 순항을 막을지도 모를 집안 사정이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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