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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10)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학교, 앵글로 아메리칸 스쿨(AA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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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4년 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다 지난달 말 한국에 돌아왔다. 첫째 아이 대학 입시 때문에 아내와 둘째 인영(14)이는 2년 늦게 러시아에 따라왔다. 모스크바에는 인영이가 다녔던 앵글로 아메리칸 스쿨(AAS·The Anglo-American School of Moscow) 외에 HCA(Hinkson Christian Academy), ISM(International School of Moscow), BIS(British International School) 등 국제학교가 여럿 있다. 이중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학교가 AAS다. 보통 1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 우리 애도 신청한 지 2년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교 인기가 워낙 높기도 하지만 미국·영국·캐나다 대사관 자녀를 비롯해 이 세 나라 국적 학생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니 한국 학생은 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앵글로 아메리칸 스쿨은 언덕 위에 있어 안전하다. 학교 담벼락에 각각 붙어있는 ‘캐나다 대사관’ ‘영국’ ‘미국’표시는 1950년대 이 학교 설립 당시 이 세 나라 대사관 직원들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됐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2000년 모스크바 북서쪽에 위치한 지금의 캠퍼스를 옮기면서 극장·수영장 등 최첨단 시설을 갖췄다.

 인영이는 이번에 두 번째 해외 생활이다. 3살 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독일에 살며 독일 국제학교를 다녔다. 귀국 후 2~5학년은 공립초에 보냈다. 러시아엔 5학년을 마친 후 갔다. 독일·한국·러시아 3개국 교육을 모두 경험한 셈이다. AAS는 인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학교다. 매일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고 할 정도였다.

 AAS를 좋아하는 건 학교 시설 영향이 크다. 누가 “학교 어떠니”라고 물으면 인영이는 “수영장이 넓고 깨끗하다” “볼쇼이 극장이 좋다”고 대답한다. 당연히 아이가 다녔던 한국 공립초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시설이다. 자연환경도 좋다. 학교 주변이 온통 숲이다. 인근에 크로스컨트리(눈이 쌓인 산이나 들판에서 스키를 신고 정해진 코스를 가능한 빨리 완주하는 경기) 코스가 있을 정도다. 건강 검진차 병원에 가서 AAS 다닌다고 했더니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겠다(reject)”고 했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이 학교에 전해져 온다. AAS가 워낙 자연환경이 좋아 병 걸릴 턱이 없으니 건강 검진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보내보니 시설은 물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철저한 보안 등 모두 마음에 들었다.

교복 입은 학생도 학생증 없으면 출입불가

 학교를 고를 때 가장 신경 쓴 건 보안 문제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치안이 불안하고 테러 우려가 항상 있어서다. 이곳에서는 해 떨어진 후엔 바깥출입을 거의 안 한다. 최근 한 국제학교 교사가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구타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AAS는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위치만으로도 ‘안전하다’는 인상을 줬다. 평지에 있는 학교보다 위험 상황에 노출될 확률이 적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또 학교 건물 전체를 벽이 둘러싸고 있어 얼핏 보면 요새 같다. 담 때문에 밖에서는 교내를 들여다볼 수 없다. 가장 높은 건물이 5층인데, 학교 밖에서는 기껏해야 3~5층 정도만 보인다. 그렇다고 벽이 사람 키보다 훨씬 높지는 않다. 중학생이 밖을 볼 수 있는 정도다. 학교 안에 있어도 생활하기 답답하지는 않다는 얘기다.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한다. 학부모를 포함한 외부 차량이 교내에 들어가려면 학교에서 발급받은 통행증이 필요하다. 통행증이 없으면 차 안에 이 학교 교복 입은 학생이 타고 있어도 입구를 통과할 수 없다. 학부모의 여권 심사는 물론 학교 사무실에 학부모로 등록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교내에 들어갈 수 있다. 외부인 뿐만이 아니다. 재학생도 까다롭게 관리한다. 스쿨버스를 타려면 학교에서 발급한 학생증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면 교복을 입고 있어도 버스를 탈 수 없다. 학생증을 집에 놓고 왔다면 어떻게 할까. 아침에 아무리 급해도 스쿨버스를 타려면 집에 가서 가져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운전기사가 아니라 학생증 검사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차량을 이용하는 모든 학생을 철저히 검사한다. 교복 입은 학생까지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는 걸 보고 초반에는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믿음이 갔고, 아이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다.

유럽 다른 나라 경험할 기회 많아

 이 학교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방과후 수업이다. 100% 무료인 방과후 수업은 정규 수업 이상의 질(質)을 자랑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스포츠 활동이다. 인영이도 농구·배구·수영·테니스·크로스컨트리 등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드라마(연극), 수학경시대회(Mathcounts), 지식퀴즈대회(Knowledge Bowl), 스피치 앤 디베이트(Speech and Debate) 등이 있다. 두 학기로 나뉘어진 정규 수업과 달리 방과후 수업은 3학기제다.

 중학교부터 참여할 수 있는 중부·동유럽 학교 협회(CEESA·Central and Eastern European School association)는 이 학교의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방과후 수업 참여 학생 중에서 학교 대표를 뽑아 CEESA 소속의 다른 학교 학생과 교류한다. CEESA에는 터키의 이스탄불 국제학교(Istanbul International Community School)와 체코의 프라하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Prague), 핀란드의 헬싱키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 of Helsinki) 등이 속해 있는데, 대회 별로 각각 다른 학교가 주최(host)한다. 만약 지식퀴즈대회 주최 학교가 헬싱키 국제학교라면 CEESA 소속 나머지 학교 대표들이 헬싱키 국제학교를 방문해 대회에 참여한다. 학교 대표라고 하면 한국에서처럼 시험으로 선발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다르다. 평상시 참여도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지식퀴즈대회엔 수업을 들은 전체 학생 18명 중에 6명이 교내 대표로 뽑혀 독일 베를린에 다녀오기도 했다.

 인영이는 드라마 과목 대표로 베를린, 지식퀴즈대회 대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다녀왔다. 보통 3박 4일 진행하는데, 숙소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주최 학교가 홈스테이를 연결해 줘 교통비만 있으면 된다.

 CEESA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높이는 촉매제인 동시에 다른 나라를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이런 활동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대학 입시 부담이 적은 국제학교 학생들이 부러웠다. 만약 한국이라면 이런 기회를 얻기도 어려웠겠지만 초·중·고생 모두 입시에서 자유롭지 못해 프로그램을 즐기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초등 졸업 때 연구 논문 발표

 초등학교 졸업 프로젝트도 인상 깊었다. 러시아에 올 때 인영이는 한 학년을 높여 와서 6개월 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프로젝트는 4~5명이 한 조를 이뤄 한 가지 주제를 두 달여 동안 연구한 뒤 부모 앞에서 발표하는 활동이다. 환경·스포츠·경제 등 관심있는 주제를 정하면 된다. 우리 애는 ‘동물 실험을 안 하는 화장품 회사’를 주제로 정했다. AAS는 한국 초등학교처럼 체육·음악 등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담임교사가 대부분의 과목을 가르친다. 프로젝트 역시 담임이 담당한다. 하지만 연구는 전적으로 학생 몫이다. 도움을 요청할 때만 학교가 관여한다. 예컨대 학생들이 “동물실험을 안 하는 화장품 회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인터넷과 책을 찾아봐도 동물 실험 역사를 알 수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학교 측이 관련 자료를 제공하거나 자료를 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다. 자료 찾아서 정리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있다. 인영이는 여자애들을 대상으로 ‘동물실험 안 하는 화장품 회사 제품 매니큐어 발라주기’ 이벤트를 진행했다.

 처음 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러시아에 간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담임교사가 아이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이를 위한 영어교육’(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에 참여하는 걸 감안해 조를 배정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리더십 있는 여학생과 같은 조가 됐다. 그 조에는 통제가 잘 안 되는 짓궂은 남학생도 한 명 있었는데 리더십 있는 여자애가 이 남학생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잘 유도했다고 들었다. 그 여자애의 리더십도 대단하지만 모든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조를 구성한 담임교사의 배려에도 적지 않게 놀랐다.

 사실 아이가 연구를 진행할 때는 뭘 하는 지 감이 잘 안 왔다. “바디샵(Body Shop) 크림을 사 달라” “키엘(kiehl’s) 제품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도대체 뭘 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두 브랜드가 동물실험을 안 하는 화장품 회사였다. 이 정도로 아이들 힘으로만 연구를 했다. 한국이었으면 초등학교 졸업 프로젝트를 대신 해주는 사교육이 성행했을 지도 모른다. 발표회에 가보고는 더 놀랐다. 대학교 졸업 논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초등학생이 준비한 거라고 보기엔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학생이 골고루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한국의 수행평가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조별로 평가를 하면 적극적인 학생과 열심히 안 하는 학생 간에 적지 않은 갈등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에게 골고루 발표 기회가 돌아갔다. 연구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A가 했다면 연구 과정 발표는 B가, 연구 주제 발표는 C가 하는 식이었다. 부모와의 질의응답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대답 잘하는 한 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답하는 게 아니라 “그 질문에는 B가 대답할 수 있다”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스스로 하는 능력은 물론 창의력·협동심까지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졸업 발표만이 아니다. 드라마(연극)·합창·밴드 활동 등에 참여하면 어떤 활동이든 무대 위에서 한번은 꼭 공연을 한다. 사실 공연을 보러 가보면 아이들 실력이 부족할 때도 많다. 긴장해서 떠는 애들이 눈에 띄어 집중이 안 될 때도 있다. 한국이었으면 “뭘 이런 걸 보여주려고 바쁜 부모를 부르냐”는 불만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학생이 가진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무대에 오른다.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참여하고 경험하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대를 겁내던 아이도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켜나간다. 이런 경험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경험한 모든 게 아이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빠 김희중(49) 코트라 러시아 주재원
정리=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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