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독일작가「프란츠·카프카」의『심판』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은행의 영업부 대리인「요·제프·K」.
30세가 되던날 그는 돌연 체포되었다.
이유는 그도 몰랐다.
누가 밀고를 한 것이 틀림없는데 정작 밀고를 받을 만한 일은 없었다.
K는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실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때에 K가 사는 마을의 한 늙은 신부가 이런 전설을 들려주었다.
한 사나이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와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문지기는 지금은 안된다고 잡아뗀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지만, 그 사나이는 허가가 날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앉아서 며칠이고, 몇년이고 기다린다.
그동안 몇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들여보내 달라고 졸랐지만, 아직 멀었다고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사나이는 오랜 세월을 두고 문지기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젠 그의 외툿자락에 붙은 벼룩까지도 찾아낼 정도가 되었다.
결국 그는 늙어 죽게 된다.
처음으로 그는 문지기에게 물어본다.
『이렇게 오랫동안 들여 보내달라고 조르는 자가 나 말고도 또 있었는가?』문지기는 대답한다.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여기로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열려있는 문이었다.
이젠 그만 닫아버려야겠다.』
K는 이 전설에서 무슨 교훈을 받았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이 있는 한 그것은 사실이다.
희망은 생명을 지탱 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카프카」의 소설에 인용된 전설은『참된 희망이란 무엇인가?』를 암시해 준다.
끝도없이 멍청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라고.
문지기는 그 사나이가 언제나 용기를 내서 이 천국의 문으로 뛰어 들어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런 용기는 발휘되지 못했다.
「카프카」는 이런 환상적 희망·용기를 갖추지 못한 희망의 무위함을 하나의 폐종으로 돌려 준것 같다.
그러나 세상엔 용기에 대한 오해도 없지 않다.
우리가 바라고, 또 소중히 생각하는 용기는 떳떳하지 못하게 죽는 용기가 아니고, 씩씩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용기인 것이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생을 값있게 영위하는 활력으로서의 희망을 뜻한다.
세상엔 희망을 물질적인 욕망 따위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희망이기에, 앞서 오히려 하나의 절망에 직면하는 것이며, 스스로 희망을 차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앙일보가 그 사시에서『희망과 용기를 고취하는 신문』을 자기한 것은 이 사회, 그 속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결단력을 불어넣어 주려는 것이다.
이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창간 9주년 기념일과 함께 다시금 그 뜻을 새겨 보게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