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불「레지스탕스」의 기수 『콩바』 (전투)지 문을 닫다|33년만에 운영난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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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의 일간지 「콩바」 (전투)가 지난 30일 문을 닫았다. 거의 대부분의 신문들이 「나치」 점령기에 독일 「파시즘」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을 때 「프랑스」 저항 단체의 지하 비밀 기관지로 출발했던 이 신문은 「프랑스」가 해방되었을 때 「나치」에 부역한 모든 신문이 「드골」 장군에 의해 폐간되었으나 오히려 처음으로 당당히 발매할 수 있었던 「프랑스」 저항 정신의 상징이었다. 이 신문의 죽음은 역시 같은 시기에 비밀 지하 문예 신문으로 출발했던 「라러트르·프랑세즈」가 2년 전 문을 닫은 것과 함께 「저항 세대」의 종식을 고하는 것 같이 생각된다. 특히 이 신문은 실존주의 작가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알베르·카뮈」가 편집국장을 역임, 「자유·진리·진보」의 꽃을 피운 「프랑스」 지성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이 신문은 1941년12월 「프랑스」의 지방 도시 「리용」에서 극비리에 창간되었다. 초대 편집국장은 좌익 정치가였던 「조르지·비도」였으며 반독 항쟁을 북돋고 「프랑스」 해방을 획득하기 위한 「프랑스 저항 단체」의 기관지 구실을 했다.
「콩바」가 「파리」의 거리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44년8월21일. 이날은 「나치」의 「파리 점령군 사령관」이 저항 운동 단체에 항복, 「파리」가 독일 「파시스트」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이때 「파스칼·피아」는 사장에, 「카뮈」는 편집국장이 되어 『이제 저항에서 혁명으로』라는 사제를 내어 걸고 활발한 논진을 폈다. 또한 「프랑스」 국민들은 「나치」 점령기 4년여 동안 무료 봉사 (?)로 조국 해방에 크게 이바지한 이 신문을 너도나도 사보아 하루아침에 18만부가 나갔다. 「카뮈」는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당대의 문인들인 「모니스·나로」 「조르지·베르나노스」 「장·폴·사르트르」 「에마뉘엘·무니에」 「시몬·드·보봐르」 「앙드레·말로」 등에게 집필을 시켜 비공산주의적 「프랑스」 지성을 대변했으며 정치 노선을 「자유·민주·진보」로 삼았다.
그러나 1947년 정치 노선을 둘러싸고 분쟁이 편집국에서 일어나 「피아」 「카뮈」가 퇴진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콩바」의 운명은 결정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벌써 발행 부수도 12만부로 떨어져 있었다. 「브르레」가 우경 노선을 걷는데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재정적 위기를 맞아 「앙리·스마자」를 자본주로 끌어들인 것이 또한 분쟁을 재연시켰다.
지난 2월에는 견디다 못한 「테송」 사장과 대다수 편집국원들이 「콩바」를 떠나 「파리일간」이라는 새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더욱 지난 27년간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도 자금을 대준 「스마자」씨마저 지난 7월15일에 작고하자 이 신문은 임종이 가까워진 것이다. 지난 29일 「스마자」의 조카가 「콩바」의 자진 폐간을 발표하면서 『신문을 살리기 위해 신문의 자유를 양보하면서까지 외부 원조를 찾는다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우리는 자진해서 신문사 간판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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