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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방한 … 박 대통령 대신 정 총리가 면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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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박 대통령, 박준우 정무수석. [변선구 기자]
무라야마

11일 방한하는 무라야마 도미이치(90·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대신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나게 됐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으로 아시아 국가가 피해를 본 데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당사자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방한을 주도한 정의당의 정진후 원내수석부대표는 10일 국회 브리핑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가 청와대를 방문해 박 대통령과 면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정의당에 밝혀와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으나 청와대 측에서 박 대통령 일정상 어렵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전했다. 정 수석부대표는 “청와대는 대신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나면 어떻겠냐는 의사를 밝혀왔고 무라야마 전 총리도 수락의 뜻을 밝혀 면담 일정을 협의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당초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무라야마 전 총리의 면담을 신중 검토했다. 그럼에도 면담이 불발된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첫째 이유는 일정 때문”이라며 “만나자는 요청이 너무 늦게 온 데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방한 기간 중 서로 열려 있는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 총리 면담 쪽으로 수위 조절이 이뤄진 배경엔 박 대통령이 무라야마 전 총리를 만날 경우 불거질 한·일 간 외교적 파장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사를 놓고 한·일 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우경화를 공개 비판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대통령 접견 등으로 대접할 경우 의도와 달리 오히려 일본 정부와 감정적으로 싸우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다”며 “또 정부의 공식 대화 파트너는 일본의 현 정부라는 입장과도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13일로 잡힌 총리 면담으로 절충점을 찾은 게 됐지만 외교부는 무라야마 전 총리에 대해 ‘최대한의 의전’에 나섰다. 다른 당국자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전직 인사이고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이 아니지만 일본의 총리를 지낸 데다 우리에겐 상징성이 있는 분인 만큼 정부가 예우에 소홀해선 안 되기 때문에 총리 면담이 성사됐다”고 했다. 관행상 외국 정부의 전직 인사가 방한할 때 의전은 초청한 쪽에서 맡지만 이번엔 외교부가 직접 의전 지원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의당 측이 외국 인사의 초청이나 교류 행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의전상 지원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의 2박3일간 한국 일정을 놓고 일본 정부는 벌써부터 민감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11일 정의당이 주최하는 간담회에 참석한 뒤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한 한·일관계 정립’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13일엔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예방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일본의 무라야마 전 총리 자택 앞에서 극우파의 시위가 벌어졌다는 얘기도 나와 우리나 무라야마 전 총리 측 모두 매우 민감한 상태”라며 “당국과 협의해 경호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귀띔했다.

글=채병건·유지혜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무라야마 담화=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인 1995년 8·15에 맞춰 무라야마 당시 일본 총리가 식민 지배에 사죄한 담화. “식민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정권이 담화의 계승의사를 밝혔으나 아베 정권은 2012년 총선 때부터 무라야마 담화를 뒤집으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민 지배 사과한 담화 당사자
청와대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한·일 외교적 파장 고려한 듯
외교부, 최대한 예우 갖춰 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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