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한국 2030 … 도전을 겁내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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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쉬나무르티 최고교육책임자는 GE에서 20년 일한 인사 전문가다. [사진 GE코리아]

“힘들고 혼란스러워요.”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세계적 기업인 GE에 취업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들도 똑같았다. 7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팰리스 호텔. GE코리아의 3년차 미만 직원 10명의 하소연은 여느 20~30대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물었다. “이제까지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좋은 직장에 취업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들의 눈길이 쏠린 곳엔 GE의 최고교육책임자(CLO)인 라구 크리쉬나무르티 부사장이 있었다. 전 세계 162개국에서 활동하는 GE의 인재 양성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그는 단언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강조했다. “여러분은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는 방식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착하게 말 잘 듣는 직원 대신 스스로 위험을 감수할 줄 아는 리더로 커야 성공할 수 있다.”

 직원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그를 붙잡았다. 기자도 만 3년이 안 된 사회 초년병이다. 세계적 인재 양성 전문가를 향해 또래의 고민을 대신 물었다.

 - 뭘 바꾸라는 거냐.

 “한국의 2030세대는 근면성실하고 직업의식이 강하다. 집중력·적응력이 강하다. 속도도 빠르고 호기심도 많다. 글로벌 기업이 탐낼 만한 자질이다. 문제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정신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자기 표현력이 약하고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는 걸 무서워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한국 사람끼리만 어울린다. 스스로 벽을 깨면 훨씬 성공할 수 있다.”

 - 유독 한국 젊은이만 나약한가. 당신은 한국의 강점을 보러 온 것 아니냐.(※그는 올 초 제프 이멜트 GE 회장이 “삼성에서 배우라”고 강조한 후 한국 인재 양성의 강점을 살펴보기 위해 방한했다. 유럽과 인도·두바이 등을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만이 아니다. 빠르게 성장한 아시아 국가의 인재는 대체로 도전을 회피한다. 이들은 어른의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기업도 그런 방식으로 커 왔다. 잘 복종하는 인재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올라서느냐, 내려가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글로벌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기업은 이런 혁신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개인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 왜 아시아가 특히 그런가.(※그도 인도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후 미국으로 건너간 아시아 인재다.)

 “부모 세대가 이룩해 놓은 토양 위에서 누구보다 풍요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굳이 도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지금 세대는 누구보다 좋은 교육을 받았다. 개인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를 제공한 나라에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 정신이 중요하다.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에 태어난 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 명심하라.”

 - 우리는 윗세대보다 더 불안하고 막막하다.

 “당연하다. 사회는 자꾸 혁신적인 인재가 되라고 하는데 스스로는 뭘 바꿔야 하는지를 모르는 상황이 불안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분명히 해두자. 이제까지의 방식을 고수하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작아진다. 미래 리더십의 자질은 용감하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창업, 중소기업에 용감하게 뛰어들라.”

 - 한국 부모가 들으면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은 대기업 선호 현상이 강한 나라다. 대기업 입사가 신분상승처럼 여겨진다.

 “앞으로는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평생 직장의 개념은 무너진 지 오래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항상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도전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남들 다 가니까 따라서 대기업에 취업한 사람과 사명감을 가지고 중소기업에서 발로 뛴 사람 중 40~50대에 더 빛날 사람은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일어서려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러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나, 뭘 해야 한국 기업도 글로벌 기업이 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재교육을 강조했다. “조직이 커질수록 기업 내부를 관통하는 신념이나 가치관이 흐려질 수 있다. 내부 목소리를 한데 모으고, 변화에 맞춰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이를 조직원에게 다시 교육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GE는 ‘크로톤빌’이란 기관이 이런 일을 한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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