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의 발상은 고려말"|여말의 이두표기 『나화상승원가』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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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두자로 표기된 여말고승 나옹의 『나화상승원가』가 공개되어 우리 나라의 가사발생시기가 고려 때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4백5구로서 6연체로 된 연속체가사인 『승원가』는 균여의 11장으로 된 『진지십원가』에, 연결 지을 수 있는 양식이며 이 양식은 송강의 『사미인곡』, 불우헌의 『상춘곡』으로 이어지는 한국가사문학의 맥락으로 평가된다.
김종우 교수(부산대)에 의해 발굴된 『승원가』는 당초 함안 조씨의 가보로 전해지는 것을 조혁제씨(부산동래구)가 보관, 이를 공개함으로써 가사는 고려 때 불승에 의해 포교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국자제정에 앞서 향찰 또는 이두로 지어졌다는 국문학계의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준 것이다.
우리 국문학사상 가사는 여말에 형성되었을 젓이라는 학설이 없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가사의 최초작품을 불우헌의 『상춘곡』으로 잡는 등 가사는 조선 초 치사한객이나 산림처사의 자연미 접근과 산문정신 난숙으로 보고있다.
승원가의 특징은 나옹의 작품으로 전해진 『서왕가』『심우가』『악도가』와는 달리 이두자로 표기되어 향가와의 맥락을 찾을 수 있고 내용에는 세사에 너무 탐닉하지 말고 일심으로 선근을 닦아 염불 수도함으로써 극락정토로 가자는 불교의 포교방편으로 일관된다. 즉 수도참선을 권장하는 불교적 선전문구가 가사문학으로 승화된 것이다.
흥미 있는 것은 오늘날도 항용 쓰는 속담·이언 등이 눈에 띤다는 점이다. 가령 <목말라 새미파기><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니><죄는 너지어도 벼락은 내당커든><설상가상 무산일고><노난입에 아미타불>등의 유래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노래의 형식은 『서왕가』가 96구, 『악도가』70구, 『심우가』1백93구인데 『승원가』는 4백5구로서 불우헌의 『상춘곡』보다도 약4배가 길다. 이렇게 월등히 긴 가사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여말부터 이두식 표기법으로 문자가 정착한 때문이 아닌가 보여진다.
『승원가』를 비롯한 나옹의 국문가사가 가사문학의 효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포교에 있어서의 가송의 효과와 가사출현의 가능성을 들 수가 있다.
김종우 교수는 『가사의 발생은 고려 때 고명한 불승들에 의해 불교포교의 방편으로 이미 있어온 장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수도참선을 권장하는 불교적 선전문구가 창으로 유포된데서 비롯됐으며 현존하는 최고의 가사는 나옹의 「승원가」로 본다』고 결론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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