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레의 길잡이가 되소서|김종필<국무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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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 국민의 흠모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오신 대통령 각하 영부인께 삼가 영원한 작별을 아뢰게 된 이 고별식전이 웬 말입니까.
우아와 인자와 슬기를 아울러 겸하였던 자랑스러운 영부인을 졸지에 잃게된 우리의 애통을 실로 어디에 견줄 수가 있겠읍니까.
돌이켜보면 영부인께서는 세상을 떠나신 그 날까지 20여 성상을 지성으로 대통령 각하를 보필하셨으며, 특히 지난 63년 12월 17일부터 오늘에 이르는 10년 8개월 동안, 나라의 원수요 겨레의 영도자이신 대통령 각하의 영부인으로서 달리 추종이 있을 수 없는 만전의 내조로 국가의 안정과 국민의 융화에 공헌을 쌓아오셨습니다. 대통령 각하께는 공사간을 막론하고 다시없는 배우로서 자녀분들께는 사려 깊은 현명하신 어머님으로서 성실 헌신으로 보내신 그 나날을 누군들 잊겠읍니까.
영부인께서는 일찍이 양지회를 창설하시어 이 나라 뭇 여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밝은 등불을 켜 주셨고 『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를 창간하시어 불우한 새싹들에게 아름찬 소망과 천진한 기쁨을 북돋워 주셨읍니다.
양로원과 고아원을 손수 찾으셨고, 전국 77개의 중환자촌마다 영부인의 사랑의 손길이 닿아 주셨습니다. 영부인께서 운명하시기 며칠 전 휘호하신 『웃고 뛰놀자.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라는 어린이 예독 비문이 이 세상 절필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읍니까.
대통령 각하께는 민정을 밝게 전하시는 충언을 드리고, 국민의 소리에는 스스럼없이 귀를 기울이셨던 영부인께서는 이 나라 어느 한구석의 불행에도 무심치 않으셨으며 민의상달의 긴요하고 보람찬 일을 위해 혼신의 수고를 하셨읍니다.
영부인께서는 매일 아침 일찍이 「트랜지스터·라디오」의 「스위치」룰 넣어 손에 드신 채 이방 저방의 자녀들들 깨우시는 일을 첫 일과로 삼으셨읍니다. 방송을 통해서 전해지는 민의의 소리를 잠시라도 놓칠세라 그렇게 하셨다고 들었읍니다.
영부인께서는 늘 『남편이 어떤 요직을 맡으면 아내도 그 자리에 어울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훌륭한 내조자는 못 될지라도 최소한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또한 『지도층의 인사들은 언제나 국민의 거울이 되도록 진실하고 충성되게 살아달라』고 되풀이해서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울리는 듯 합니다.
이제 우리 겨레의 어머님을 보내드리지 않을 수 없게된 이 자리를 우리는 영부인께서 평소에 좋아하시던 꽃들로 꾸며 가꾸었읍니다
흰 국화, 노란 국화, 흰 장미, 노란 장미, 흰 백합, 그리고 흰 「글라디올러스」입니다. 모두가 진보와 사랑 청초와 청렴을 상징하는 꽃들입니다. 제철따라 피는 꽃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가신 님의 유덕을 더욱 그리게 될 것입니다.
그보다도 언젠가 『만일 대통령께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도 함께 죽겠노라』고 하셨던 말씀을 저는 지금 찢어질 듯 하는 가슴속에서 되새기고 있습니다. 영부인째서는 그토록 투철하고도 확고한 사생관을 지니고 계셨던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광복의 기쁨을 다시 한번 온 겨레와 나누시며 한반도의 평화를 영구화하려는 결의를 천명하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도가공한 공산주의자의 흉탄에 쓰러지신 일이야말로 국가와 대통령 각하를 위해 스스로를 바치신 거룩한 순국의 행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이보다 더한 헌신과 희생이 또 어디있겠읍니까.
못다 펴시고 가신 영부인의 나라사랑, 겨레걱정의 애정을 이어 받아 우리는 대통령 각하를 더 뜨겁게 보필해 드리는 가운데 오늘의 시련을 총화로 극복하고 조국의 번영을 기필코 성취할 것을 이 자리에서 굳게 다짐하면서 또한 이 길만이 영부인께서 이 땅에 뿌리신 고귀한 씨앗을 풍요한 추수에로 이끌며 동시에 오늘 이토록 사무치는 민족의 슬픔을 달래는 일이라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고인이시여, 가시는 길길이 평안하시옵소서.
그리고 늘 우리의 길을 밝히 비추시는 큰 빛이 되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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