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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규원<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고은의 <울음>, 정현종의 <비워둠>, 홍완기의 <심심함>이 드러나 있는 『월미도에서』『꿈 노래』『한발』등은 이 시대와 자기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하려 하는가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는 의식의 결정들이다.
고은의 『복활』(한국문학)과 『월미도에서』(신·동아)는 근간된 책4시집 『문의마을에 가서』와 함께 그의 의식의 변화와 그 변화의 산물인 <울음>등의 말이 종전과 달리 무슨 의미로 차용되고 있는가를 명료히 한다. 그의 의식변화의 도정을 간략하게 형식화하면 <나>―<우리>―<역사>라는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인데, 이것은 물론 편리한 방법을 택한 분류다.
고은의 시가 자기 자신이라는 시적 대상을 가졌다는 것은 작품의 많은 부분이 그의 과거와 현재에 얽힌 사물들로 가득 차 있음에 근거한 진술이다. 누이·형·형수·눈물·병·폐결핵·바다·울음·어머니·죄·불타·죽음 등은 초기의 고은이며, 사랑·길·바람·죽사·강물·물·물소리·해일·청수산장·우리·밤·우연·청진동등은 근년의 그의 모습이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나>를 극적으로 내세우고 <나>를 창조하고 <나>를 신화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그의 시는 개인 부재 한국시의 공간의 한 구석을 파괴하는데 공헌한다. 이것은 경문적 어법과 조사의 특이한 활용이라는 기법상의 성공적 탐구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시적 결정이다.

<나>아닌 <우리>와의 해후를 얘기하고 있는 『청진동에서』와 습속적인 허무를 가장 일반적으로 대표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를 각각 절창으로 보여주는 『문의 마을에 가서』의 세계는 결코 서로 먼 거리는 아니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문의)> 라는 귀절과 <우리가 떠들지 않을 때 누가 9층 10층 밑에서 우리로 떠돌겠는가(청진동)>라는 시귀에서도 드러나듯, 모두가 무엇이든 주어진 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받아들임>의 의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한 호격의 빈번한 사용과 「해일」이라는 낱말을 통해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받아들일 수 없음>또는 <받아들이지 못함>의 세계가 나타나 있는 <복활>「월미도」등의 세계는 앞의 두 작품과 큰 차이가 있다.
어째서 <월미도가 여러 섬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 섬들이 서로>바라보던 시인이 <누가 우는소리>와 <가장 무거운 암초를 물어뜯어라>라는 소리를 듣고 또 절규를 하게 되었는지는 고은에게 물어볼게 아니라 우리자신과 시대에게 질문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정현종은 이와는 달리 『꿈 노래』(한국문학)『마음을 버리지 않으면』(현대문학)등에서 성급한 선택 또는 무모한 방황보다 꿈의 부재를 솔직히 긍정함으로써 그 부재를 유발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 헤매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다. 그러한 내용은 <신호는 이미 죽었거나 아직 오지 않았으니 꿈은 그냥 비워두어라 그대여>라는 구절과 <영원한 「아직」인 꿈에 홀려 육체와 영혼의 메아리 사이를 그대 아직 도둑으로 떠도는가>라는 매우 「유머러스」한 표현을 통하여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때의 신부·영혼·육체는 물론 상징으로 차용된 것이다. 그의 시가 대부분의 다른 시들이 동반하는 열기와 관념에서 벗어나 의연히 빛을 발하는 까닭이나 <내 마음의 공터에 오셔서 경주를 하시든지 잘 노시든지 잠을 자시든지…>와 같은 여유를 얻고 있는 것은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차지 않는 이 마음>의 상황을 긍정한데 기인한다.
홍완기의 『한발』(심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화조차 단절된 무서운 <폐허의 심심함>이다. 그러나 이 <심심함>은 물론 역으로 표현된 것이다. <여보게 여보게, 부르면 재채기로 응답>하고 <다시 쉰 목청으로 부르면 재채기는 벌겋게 타서 아예 가루로 터지는 통곡>이 되는 응답이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목이 타는 곳은 한발의 폐허로 표현된다.
대화가 단절되어 목이 타는, 대화가 없어 목이 타는 이 무서운<심심함>의 세계를 상상해 보라―그 세계는 <정말 정말 심심하고><아주 열심히 심심한> 죽음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시의 아름다움은 그 역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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