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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백악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중편 『낙월도』의 작가 간승세씨는 버림받은 민중의 아픔과 설움을 꾸준히 또 열렬하게 대변해온 우리문단의 몇 안되는 인물가운데 한사람이다. 지난달에 발표된 『폭염』(월간중앙)과 『황구의 비명』(한국문학) 역시 그런 성격의 작품으로 이 작가에 대한 충분한 평가가 아쉬운 마당에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폭염』에서는 모처럼 얻었던 수위자리조차 재정보증인을 못 구해 놓쳐버린 <나>를 위시하여 제각기 저 나름의 <아픔>을 지닌 세 명의 사나이가 어느 볼품없는 어촌의 주막에서 어울린다. 술을 나누며 이 세상의 죄라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세 사람 모두가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인가를 서로 확인한다.
그런데 이들 중 색안경의 사내는 자기 애인을 뺏어간 소장을 순간적인 충동으로 치어버리고 도망 온 운전수이고 다른 한 명은 그를 잡아야할 임무를 띤 경찰관인 것이다.
흉어철, 어촌의 무덥고 답답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그리면서 의외의 결말로 줄거리를 끌고 간 솜씨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단편 소실의 한 정석을 익히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의 지나친 달변과 너무나 날씬한 끝맺음이 얼마간 현실감을 덜해주는 면도 있다.
그에 비해 『황구의 비명』은 시종 박진감에 넘치는 뛰어난 단편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교의 차원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폭염』의 인물들보다도 더 처절하게 버림받은 동포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 작가자신의 말을 빌면 『문둥이 자식을 둔 어머니의 아픔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기왕 못 살더라도 한국사람은 한국사람끼리(서럽지 않은 황구와 황구로)어울려 살기나 해보자는 민족적 염원이 작가의 기교를 밑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밀린 빚들을 받아오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용주골의 여인<은주>를 찾아 나선다. 도중에서 만나는 양색시들과 미군병사들, 50대의 가게주인, 손녀를 찾아달라는 글을 등에 붙이고 헤매다죽는 노파, 그리고 여기서는 <담비 킴>으로 만 통하는 은주 자신의 힘겨운 생활, 이런 것을 겪고 본 <나>는 은주에게 오히려 돈을 주며 고향에 돌아가도록 설득한다.
이런 행동이 결코 감상이나 치기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은주를 포함한. 양색시들의 거친 언사나 옹주골의 살벌한 풍경이 아무런 과장도 스스럼도 없이 담담하게 제시되어 있는 동시에 은주의 하얀 고무신이 그 두배나 되는 「워커」와 나란히 놓인 정경이나 빗속에 노파가 쓰러져 죽어있는 장면 등의 예술적 효과가 그만큼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은주가 떠나겠다고 드디어 동의하는 순간 <나>의 생각은 오히려 차분하게 자신의 삶 쪽으로 돌아온다.
『나는 아내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결한 한 여인의 긴 치맛자락이 끌려가는…(중략) 그리고 내 자식들이 왕사탕 가게 앞에서 군침을 삼킬 수 있는 그런 예사스런 골목 안이라면 판잣집인들 어떻겠는가 하고―.』이것은 일상생활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그것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소시민의식과는 달리, 주어진 일상 속에서도 고마운 것을 고마워할 줄 아는 참된 시정인 것이다.
이정환씨의 『그들의 상경』(월간문학) 에서도 천승세씨의 작품세계에서와 같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일락도의 어린이들이 신문사주최로 서울구경을 왔을 때 그것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깃거리>가 된다. 꿈속인가 어리벙벙해있는 그 애들 자신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이들을 민박시켜놓고 마치 신기한 물개들이나 보듯하는 서울 아이들 쪽에서도 그렇고 며칠동안 심심찮은 기사거리와 흐뭇한 적선의식을 갖게된 주최측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작가의 관점이란 이들 중 그 어느 하나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도 준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인솔 여선생인 <나>의 관점을 택함으로써 이 작품은 그러한 요구에 상당히 부응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대상이 된 현실의 엄숙함에 비추어 <나>의 사사로운 심리가 너무 부각되지 않았는가 싶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상경>이라는 사건과 그것이 보여준 우리현실의 어떤 속성자체일 테니까 말이다. 이밖에 박용숙씨의 『신랑감』(현대문학), 신상웅씨의 『풍화』(한국문학), 박완서씨의 『부끄러움을 가르쳐 줍니다』(신동아)등도 이 달에 눈을 끈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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