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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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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무대가 호떡을 팔러 나가면 금련은 정말이지 심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전에 장대호가 몰래 찾아왔을 때는 그런 대로 긴장감도 있고 재미와 쾌락도 맛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끼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금련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왕초선네에서 배운 미용술과 화장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머리를 틀어올리고, 눈썹을 그리고, 연지와 분을 발랐다. 그러다가 그 모든 것을 흐트러뜨리고 지우고는 다시 시작하곤 하였다.

금련이 장대호가 선물로 준 머리 장식을 정수리 근방에 꽂고 곱게 화장한 얼굴을 약간 비스듬히 돌리고 있으면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여자라도 그대로 반할 지경이었다. 금련은 그런 모습으로 길가로 통해 있는 방문을 열고 죽렴(竹簾)을 중간쯤 올려 그 아래 앉아 호박씨나 해바라기씨들을 까먹었다. 그러면서 치마 밑으로 자신의 작디작은 두 발을 조금만 보이게 살짝 내밀어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당시 여자들은 전족을 가리기 위해 긴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치마 밑으로 전족을 보인다는 것은 여간 요염한 자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금련은 일부러 발을 내미는 것처럼 하지 않고 무심결에 발끝이 치마 밖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물론 그 발은 무명 전족천과 비단 버선에 싸여 있었다. 빨간 수가 놓인 전족 신발은 누가 훔쳐가면 큰일이므로 집안에 잘 간수해두었다.

무대 집 앞을 지나가는 남자들은 금련의 모습을 훔쳐보기만 해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아 길게 한숨을 쉬곤 하였다. 어떤 남자들은 무대 집 근방을 공연히 왔다갔다하며 흘끔흘끔 금련을 바라보기도 하고, 비파 같은 악기를 들고 나와 엉성하게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러 금련의 주의를 끌어보려고도 하였다.

금련은 남자들이 자기에게 반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자세를 약간 바꾸며 호박씨를 까먹는 데만 열중하는 척했다. 금련은 자기같이 아리따운 여자에게 맥을 못 추는 남자들로 인하여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속이 없는 그들이 가소롭기도 하였다. 그들을 놀려 먹으려면 얼마든지 놀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금련은 열 자 길이나 되는 무명 전족천을 풀어 발을 씻고는 새 전족천으로 다시 발을 감았다. 발에서 풀어낸 전족천은 물에 빨아서 좁은 앞마당 빨랫줄에 걸어두었다. 올이 굵은 무명을 전족천으로 사용하는 것은 표면이 거칠어 발에서 쉽게 미끌어져 나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얀 무명 전족천이 여러 겹으로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나부낄 적마다 남자들은 금련의 은밀한 부분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질어질 흥분이 되었다.

드디어 금련이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금련이 방문 죽렴 아래 앉아 있다가 잠시 안으로 들어와 화장을 고치고 있는데, 영아가 뛰어와 다급하게 외쳤다.

"누가 전족천을 훔쳐갔어요. 방금 전까지 빨랫줄에 걸려 있었는데."

"하도 오래 써서 흐늘흐늘해진 전족천이니 신경 쓸 것 없다."

"변태 호랑말코 같은 자식들!"

영아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바람에 날려갔는지도 모르지 않으냐. 여자가 그렇게 함부로 욕을 하면 되느냐."

금련이 새엄마로서 제법 타이르듯이 말에 힘을 주었다. 영아가 입을 비쭉이며 밖으로 나갔다.

다음날 영아가 방안에 있는 금련을 또 불렀다.

"없어졌던 전족천이 다시 빨랫줄에 걸려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게 묻어 있어요."

금련이 나가 살펴보니 전족천 여기저기에 희부옇게 얼룩이 져 있었다. 금련이 코를 갖다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금털털한 밤꽃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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