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충격에 강한 '에어로젤' 실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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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7면

재킷처럼 얇은 스키복, 불에 타지 않는 수퍼 단열재, 어뢰에도 끄덕없는 충격 방지막….

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꿈의 물질 '에어로젤'이 완전한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인 공학자 이강필(58) 박사가 미국 보스턴에 세운 회사 아스펜 에어로젤(www.aerogel.com)이 다음 달부터 세계 최초로 에어로젤 양산에 들어가는 것.

에어로젤의 재료는 실리콘 산화물(SiO2)이다. 머리카락의 1만분의 1 굵기인 SiO2실이 아주 성글게 얽혀 이뤄진다. 실 사이사이에는 공기 분자들이 갇혀 있는데, 전체 부피로 보면 공기가 98%를 차지한다.

에어로젤은 열.전기.소리.충격 등을 막는 효과가 뛰어난 데다, 무게가 같은 부피 공기의 3배밖에 안될 정도로 가벼워 미래 세계를 바꿀 신소재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손바닥만 한 것을 만드는 데 사흘이 넘게 걸리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도 깨질 정도로 약해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강필 박사는 에어로젤에 특수 섬유를 조금 첨가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개량 에어로젤은 헝겊처럼 부들부들해 깨지지 않고, 짧은 시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개량품은 단열.충격방지 실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단열 실험에서는 3㎜ 두께의 에어로젤을 놓고 온도가 섭씨 1천1백도까지 올라가는 산소용접기로 한쪽을 6시간 동안 달궜으나 반대쪽의 온도는 80도 정도에 머물렀다. 물론 타지도 않았다.

충격 실험에서는 우선 두께 1. 2㎝ 철판을 놓고 그 위에서 화약을 터뜨렸다. 그랬더니 엄청난 힘의 기계 해머에 강타당한 듯 철판에 깊이 7~8㎜의 분화구가 생겼다.

다음번에는 철판 위에 두께 6㎜ 에어로젤 층을 포함한 충격방지 시트를 놓고 화약을 터뜨렸더니,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

에어로젤은 유리섬유 등 지금 쓰이는 건축물의 단열재를 대체할 전망이다. 단열 성능이 뛰어난 에어로젤을 쓰면 벽을 훨씬 얇게 만들 수 있다.

스키용품회사 버튼에서는 에어로젤로 속을 넣은 스키복.부츠.장갑을 올 9월 출시할 예정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에어로젤 소재의 우주복을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에어로젤은 충격을 막는 특수 철갑 등 각종 군사용 소재까지 응용분야가 넓다.

NASA는 2010년까지 에어로젤 우주범선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우주 범선은 태양에서 쏟아져나오는 입자들을 돛에 받아 그 힘으로 움직이는 것.

이때는 거대한 돛이 필요한데, 에어로젤은 워낙 가벼워 돛을 축구장 두배 크기로 만들어도 무게가 30㎏에 불과하다.

이런 우주범선은 현재의 우주선보다 6배 이상 빠른 시속 1백만㎞까지 낼 수 있어 태양계 외부 탐사용으로 쓰이게 된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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