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피해보는 조정사채권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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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3조치에 의한 사채의 동결과 지급이자률의 제한은 그 목적이 사채이용기업의 자금난 경감과 이부부담완화에 있었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비록 제한적으로나마 사채권자의 권익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소액사채의 초기상환, 사채의 출자전환과 기한전 변경의 허용 등 조치 취하게 한 것은 동결사채의 이자율을 연간물가 상승률 3% 유지라는 전제 밑에서 월1·35%로 정한 것이 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 같은 정책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간물가상승률이 3%로 유지되고 사채이자율이 월1·35%라면 사채권자가 받게되는 실질금리는 연10·2%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것은 물가가 연간 10%나 15%씩 오르는 경우의 명목이자율 연 약20%나 25% 수준과 실질적으로 같은 것이요, 결국 8·3조치가 비록 사상의 동결과 이율제한을 과하였다 하더라도 8·3조치 이전의 공적금융기관에 대한 예금보다는 유리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연간물가상승률이 3%이하로 유지될 때에 한하여 타당한 일이요, 또 이와같은 물가추세와 금리실태 밑에서 사채이자지급이 어김없이 이행될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관계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물가가 연3%이상 오르고, 금리지급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 사채권자는 8·3조치가 예정하고 있는 제한된 권익마저도 침해를 받게 되는 것이며, 요즘처럼 물가상승률이 사상이자율을 훨씬 상회하고 사채이용기업이 자금난을 핑계로 그러한 이자마저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 사정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요즘처럼 물가상승률이 무려 30%나 뛰는 경우 조정사채권자는 이중삼중으로 막심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우선 사상이자율은 명목적으로는 비록 월1·35%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도리어 명목이자율보다 더욱 높은 「마이너스」의 이자율 밑에 놓이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사채권자가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고있는 꼴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사채원본마저 대폭 감가되고 있는 사실을 또한 외면할 수 없다. 8· 3조치이후 현재까지의 물가상승률이 50%이상이므로 사채원본은 지금 당장 상환을 받는다 해도8·3조치 때의 반값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러한 이자마저도 지급지 못하는 경우라면 사채권자의 권익은 짓밟힐 대로 짓밟히고 마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국세청의 추계는 최근에 와서 사상이자지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동결사채원본 1천3백억원 중 약 2백억원은 이자지불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8·3조치가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현상으로서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8·3조치가 그런대로 사채권자의 최소한의 이익만은 보호할 것을 고려하고서 취해진 조치였다는 점에서 시정되어야 할 국면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 후의 격심한 경제정세변화, 그 중에도 특히 심한 물가폭등은 당초 조치의 취지를 완전히 망각하는 처사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사채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에 골탕을 먹이는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8·3조치에도 불구하고 고리대업자가 피해를 덜 받고 부동산투기업자가 안전하게 치부를 하여왔다는 사정과 비교하면 퍽 대조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사회적으로 더욱 억제되고 지탄받아야 할 부동산투기나 고리대업에 의한 치부행위와 기업의 부실경영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정책상황 속에서 유독 중산층이 보호·육성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를 보아야 하니 말이다.
경제사정의 급변은 이처럼 8·3조치의 당초취지를 크게 왜곡시켰고 그 의미를 잃게 하였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을 다시 강구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당국에 묻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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