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규 기자의 종군기] "결전 눈앞" 병사들 초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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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시간. "

18일 새벽 이라크 국경 근처 쿠웨이트 사막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설 소식이 퍼졌다. 병사들에게 준비의 시간은 끝났다. 이젠 총을 쏘아야 하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귀하들은 이제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절대 망설이지 마라. 필요하면 즉시 방아쇠를 당겨라."

캠프 버지니아의 중대장 아치 헌돈 대위의 비장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는 그렇게 병사들에게 정신교육을 했다. 부시 대통령의 최후통첩 연설 직전 기자는 이라크 국경과 좀더 가까운 캠프 펜실베이니아로 옮겼다. 이곳에서 이라크까지는 60㎞다.

캠프 펜실베이니아에는 미군 제101 공중강습(Air Assault)사단의 일부 병력이 포진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가 공격한다"는 병사들은 공수부대요, 특수부대며, 낙하산병이다.

전폭기들이야 폭탄만 퍼부으면 되고, 해군은 미사일만 쏘면 된다. 이라크는 대공포도 보잘 것 없고 잠수함은 아예 없다. 그러나 공수부대는 이라크의 소총.대포와 싸워야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고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운이 나쁘면 총에 검을 꽂고 백병전(白兵戰)도 벌여야 한다. 미군 전사자 1호는 아마도 낙하산병일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일까. 캠프 펜실베이니아 병사들에게서는 교전을 앞둔 긴장감과 죽음의 공포가 배어들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의 횟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비단 공수부대원뿐만이 아니다. 이라크 사막전선을 뚫어야 하는 탱크병, 바그다드 시가전을 벌여야 하는 육군 보병.해병들에게도 죽음은 가까이 와 있다. 캠프 뉴저지 등에 있는 3보병 사단 전투병들은 사흘 전부터 서류 '1155'와 '1156'에 서명했다.

전사하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경우 위생병이 자신을 식별할 수 있도록 신체적 특징을 적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병사가 시체로 고향땅에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병사도 병사지만 부대 전체도 아연 긴장하고 있다.

이곳 캠프 펜실베이니아엔 낙하산 부대와 함께 군단 포대가 있다. 포대는 지상전의 창(槍)이다. 특히 포대의 70여문 다연장 로켓포(MLRS)는 삼지창이다. 전폭기가 부수고 잠수함에서 크루즈 미사일이 날면 이 포대는 이라크 남부의 목표물에 포탄을 퍼붓는다.

이제 미군은 모든 전투장비를 배치한 듯하다. 위용을 자랑하는 M-1 에이브러햄스 탱크와 브래들리 장갑차는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을 종횡으로 내달린다.

트럭보다 빠른 시속 70여㎞다. 최전선에 가까이 갈수록 포장을 걷어낸 보병용 험비 지프와 트럭이 늘어난다. 영국군의 랜드로버 지프와 탱크 행렬도 눈에 띈다.

여름을 향하면서 사막은 달궈져간다. 한낮엔 30도까지 오른다. 열기가 머무는 막사 안은 10도쯤 더 높다. 그러나 전쟁이 만들어내는 지옥의 열기에 비하면 이곳은 냉장고일 것이다.

쿠웨이트 동부 사막 캠프 펜실베이니아.캠프 버지니아=안성규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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