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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우리, 3.5춘기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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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알 수 없는 심오한 세계. 바로 초등학생 머릿속입니다. 어쩔 땐 한없이 어린 것 같아 귀엽기만 하지만, 또 어쩔 땐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합니다. 이 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직접 만나 물었습니다. 뭘 좋아하느냐고, 또 고민은 무엇이냐고. 깜짝 놀랄만한 이들의 솔직한 발언을 한번 들어보시죠. 참, 이 지면의 자화상은 초등학생들이 요청을 받고 그린 자기 얼굴입니다. 2~3면 기사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아닙니다.

초등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내 머릿속엔 이런 생각 들어 있어요

2014년을 살아가는 초등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0년 전보다 더 행복할까, 아니면 더 불행할까. 스마트폰 등 유혹은 더 늘었는데, 이를 즐길 시간이 오히려 줄고 대신 경쟁만 더 심해진 현실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초등학생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해 서울 시내 10개 초등학교 4~6학년 17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은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 삼성2동 삼릉초, 도곡1동 언주초, 개포1동 개원초, 개포2동 개일초, 서초구 서초동 교대부초, 반포동 잠원초, 서초3동 신중초, 송파구 잠실동 잠일초 등 강남3구 내 학교 9곳과 사립학교인 동작구 흑석동 중대부초 재학생이다. 모두 부모 동의를 얻어 했다. 동의를 얻지 않고 길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많았으나 지면에는 싣지 않았다. 이밖에 학교장 허락을 받아 4~6학년 155명(언주초)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그 결과 10년 전에 비해 스트레스는 한층 심해졌지만 이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대상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당시 초등학생은 고민이 생기면 부모(부모 56.5%)를 가장 먼저 찾았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털어놓은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늘어난 것이다. 또 10년 전엔 고민이 없다는 응답자(23.1%)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스트레스가 없다고 답한 학생은 3.2%에 불과했다. <그래픽 참조>

이영선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실장은 “학업 스트레스는 보통 중학생이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초등학생의 성적 스트레스가 높다”며 “아이들이 부모라는 존재를 성적보다 더한 스트레스 원인, 즉 관리자·통제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엄마’‘성적’ 등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엄마

① 남자애들끼리 싸울 때도 있다. 그 상황에 엄마가 끼어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학교까지 찾아와서 난리치면 그 순간 애들 사이에 소문나고 왕따 당한다. 엄마가 가끔 너네들은 3.5춘기(사춘기 전 단계) 같다고 말한다. 난 우리가 그냥 사춘기 같다. (초4 A군)

② 엄마가 나서서 문제가 해결된 걸 본 적이 없다. (초5 A양)

③ 남자애들이 롤(리그 오브 레전드) 한다. 학교에서 게임 얘기 하다가 담임 선생님한테 걸려서 엄마들이 불려왔다. 그런데 한 엄마가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더라. 집에서는 착한 척하다 학교에서 달라지나 보다. 조퇴하고 PC방 가는 애들도 있다. (초6 B양)

④ 엄마가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느낄 때는 “학원 조금만 줄여줄까”라고 말할 때. (초4 B군)

⑤ 오빠가 공부를 잘하는데 비교될 때 정말 싫다. 오빠는 오빠고, 나는 나다. 그냥 놔두면 잘할 텐데 엄마가 자꾸 “공부해라, 오빠 봐라” 이럴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진다. (초5 C양)

⑥ 엄마가 동생과 비교할 때 제일 싫다. (초5 D양)

⑦ 엄마는 자꾸 엄마 스타일로 옷을 입히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촌스럽다. 백화점에 옷사러 가면 꼭 기분 상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왜 안 사주는지 모르겠다. 앞머리 내리고 다니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듣기 싫다.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은 내가 잘 아는데 왜 어른들 좋아하는 범생이 촌스런 스타일로 다니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초6 C군)

⑧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주는데 맨날 “왜 이것밖에 못해”라고 짜증낸다. (초5 D군)

성적

① 공부 잘하는 것도 부담이다. 100점 맞다가 한두개 틀리면 당장 엄마한테 혼날까봐 걱정된다. (초4 A군)

② 스트레스 받는다. 또 엄마가 화낼까 무섭다. 엄마가 “다른 애들은 공부 잘하는데 왜 너만 못하냐”고 하면 울고 싶다. “이번에 실수했구나, 다음에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위로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원·학습지 하느라 자유시간 거의 없다.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무서워서 얘기 못 꺼내봤다. (초4 B군)

③ 시험에서 1개만 틀려도 못한 것 같다. 평균 97점 정도 나온다. (초5 E양)

④ 원래 학원 15개 다녔는데 열심히 안하니까 엄마가 다 끊었다. 지금은 영어·미술·컴퓨터·검도·피아노 5개만 다닌다. 성적 떨어지면 창피하다. (초5 C양)

⑤ 부모님이 다른 애들은 중학교 과정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식으로 성적 비교할 때 짜증난다. 성적 나쁘면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 친구랑 못놀고 게임·TV 다 금지다. (초5 D군)

선생님

① 부모님 외에는 학원 선생님이랑 얘기 많이 한다. 학교 선생님이랑은 딱히 하는 얘기가 없다. (초5 F양)

② 선생님한테 고민을 말할 수 없다. 갈등 있는 친구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이 그 친구를 불러서 너무 곤란했다. 3자대면 하면 정말 힘들다. (초5 C양)

③ 담임 선생님이 늘 먼저 다가와준다. 얼굴이 어두우면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니까 말을 안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친구관계 등 고민을 털어놓으면 바로 3자대면을 한다. 그럼 바로 왕따되는 거다. (초5 C양)

④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한다. 그래도 고민이나 속 얘기는 안한다. 일상적 대화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고민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쌓아뒀다가 한번에 폭발한다. 그냥 혼자인 게 제일 낫다. (초5 E군)

욕·싸움, 그리고 일탈

① 3학년부터 욕 쓰기 시작한다. 4학년 넘어가면 대화 절반이 욕이다. 욕 하는 나이가 점점 내려가는 것 같다. 얼마 전 하교길에 2학년 애들이 대화하는 거 듣고 충격받았다. 우리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2학년 애들도 절반이 욕이더라. 욕은 웹툰에서 많이 배운다. 인터넷 악플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애들도 많다. (초4 A군)

② 카톡(카카오톡)·카스(카카오 스토리) 단체 채팅 싫다. 좋은 얘기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욕이다. 나한테 하는 게 아니어도 그런 거 보면 뭔가 기분이 별로다. 카스 상태 메시지로 싸운다. 예를 들어 A가 B 욕하고 싶은데 자기 카스에 ‘내 눈 앞의 나쁜 X,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올린다. 그러면 B는 자기 카스에 ‘관종(관심종결자·관심받고 싶어 안달난 사람) 짜증난다’라고 올린다. (초6 G양)

③ 카톡·카스가 문제다. 단체톡할 때 초대받지 못하면 상메(상태 메시지)에 ‘○○○ 재수없어’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쓴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된다. (초5 C양)

④ 여자애들은 카톡을 뒷담화용으로 쓰는 것 같다. (초5 E군)

⑤ 여자애들은 단체카톡으로 왕따시키는데 남자들은 그런 거 안한다. 카톡으로 수다 떨기보다 게임 아이템 주고 받는다. (초6 C군)

⑥ 얼마전에 학탐(학교탐방) 한다고 몇몇 애들이 한밤중에 몰래 학교 가서 선생님 물건 건드리고는 그걸 카톡 단체방에서 자랑했다가 선생님 귀에 들어가 난리 난 적 있다. (초6 B양)

돈, 꿈, 그리고 돈

① 돈이란 갖고 싶은 것, 그리고 욕망. (초4 A군)

② 우리집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주도 못 가봤다. 아, 하와이랑 서유럽 몇 나라는 다녀 왔다. (초6 B양)

③ 변호사 되고 싶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초5 H양)

④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다.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 (초5 I양)

⑤ 축구선수 . 돈 많이 버는 것 같아서. (초6 G군)

⑥ 배우가 되고 싶다. 원래 가수를 꿈꿨는데 성추행 당한다고 그러길래 접었다. 배우는 재밌으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좋다. (초5 C양)

⑦ 한의사가 되고 싶다. 왜 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돈 많이 벌 것 같아서 되고 싶은 것 같다. (초5 E군)

⑧ 기계공학자 . 부자는 아니어도 된다. 사고 싶을 때 살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초5 D군)

⑨ 유엔사무총장 되고 싶다. 돈엔 크게 관심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영어·불어·중국어·일어·한자 한다. 불어는 지난 여름방학 때 캐나다 연수가서 배웠다. 집에서 안 잊어버리게 공부한다. 중국어·일어·한자도 주1회 학원 가고 매일 연습지 푼다. 영어는 주2회 2시간씩 과외한다. (초5 E양)

아이돌

① 주변에 엑소에 미쳐있는 친구가 있다. 두꺼운 공책 사서 멤버별로 키·몸무게·별자리·띠·출신학교는 물론 네이버 연관 검색어까지 다 따로 정리한다. 엑소 앨범 2장 사서는 1장은 비닐포장을 뜯지도 않았다. 보관용이란다. 또 UC노벨(www.ucnovel.com) 가서 소설 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랑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돼서 사랑하는 내용이다. (초6 J양)

② 엑소 보러 방송국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혼난 적 있다. 엄마한테 혼나지 않고 엑소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중이다. (초5 H양)

③ 아이돌, 별로 안 좋아한다. 어릴 때 엄마가 듣던 이문세 노래 좋아한다. 그래서 오히려 엄마가 놀린다. 최근엔 방탄소년단도 모르냐고 무시했다. (초6 B양)

이성친구

① 사귈 필요성 못 느낀다. 남자애들 하는 짓이 철이 없다. 그래도 사귀는 애들이 많다. 우리 반은 모태솔로 많은 반에 속한다. (초6 J양)

②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친구 만나서 시간 뺏기기 싫다. (초5 F양)

③ 사귀면 공부에 방해될 것 같다. 외모에 신경써야 하고 선물 챙겨줘야 하고. 공부할 시간에 남자친구 생각만 할 것 같다. (초5 H양)

④ 관심없다. 기본적으로 남자애들이 멋있지 않다. (초5 I양)

⑤ 여자친구 생기면 공부보다 축구에 방해될 것 같아서 싫다. (초6 G군)

⑥ 사귀는 친구 보면 부럽다. 카스에 남친·여친 구하는 방이 있다. 거기에 사진과 프로필을 올리면 카스 친구 신청해서 우선 온라인 친구가 되고, 그러다 마음에 들면 사귄다. (초5 C양)

⑦ 관심없다. 그냥 다 친구다. (초5 E군)

⑧ 별것 아니다. 사귄지 100일 넘었고 부모님도 아신다. 학교 친구들이 놀리는데, 부러우니까 놀리는 거다. 몇몇 친구는 내 여자친구의 친구를 연결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하교할 때 손잡고 같이 가거나 기념일에 선물 사주고 카톡 하는 게 전부다. 그런데 선물이 너무 찌질하면 비교당하니까 좋은 거 사주려고 용돈 열심히 모은다. 이번 크리스마스(※취재 당시 크리스마스 전이었음)에는 틴트 사달라고 해서 틴트랑 로션 사줄 생각이다. (초6 C군)

⑨ 관심없다. 주변에서 보면, 사귀다가 헤어진다고 괴로워하진 않는다. 그냥 쪽 팔린다. 원래 여자가 남자 차는 건데 남자가 찼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초5 D군)

외모

①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는다. ‘셀카’찍고 ‘뽀샵’하면 되니까. 용돈은 대부분 먹는 데 쓰지만 립밤이나 매니큐어도 많이 산다. 자연스러운 붉은 색 도는 틴트(입술에 바르는 액체형 색조 화장품, 립스틱보다 색이 잘 표현되면서도 잘 지워지지는 않는다)를 바르고 싶다. 그런데 틴트는 일진(예쁜 애들)이 바르는 거다. 일진도 아니면서 바르면 애들이 뒷담화 한다. 제일 예쁜 애가 틴트, 그 다음이 붉은 색 립밤 바른다. (초5 D양)

② 여드름이 고민이다. 이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5 E양)

③ 이마에 여드름 났다. 병원 가서 여드름 박멸해야 한다. 여드름 나면 바로 찌질이 된다. (초6 C군)

안혜리·성시윤·윤경희·김소엽·정현진·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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