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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빈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2일상오8시 유해가 영결식장으로운구되는 순간 20여명의유족들은 큰소리로 통곡을했으며 소속의원들도 눈물을 감추지뭇했다.
특히 30년동안 정치내조를한 부인이여사는 다튼유촉족에게 부축되어 걸으며 몸부림쳤다.
연도
유해는 이기택 신상우 정명수의원등 10명의 소장의원 손에의해 국립의료원소속 서울7가1423호「앰블런스」 로 옮겨졌다. 경찰의 「사이카」 와「세단」이 선도하고 7대의 육본소속 「지프」 가 태극기와 당기·초상화·고인의 명정과 영점을 싣고 뒤따랐으며 그뒤에 영구차·고인이 타던서울1다5751호 「포드20M]·유족과 장례위원차등1㎞에 이르는 영구행렬은 상오8시10분 상도동을 출발, 서서히 제1한강교→남대문→국회앞→신민당사를 거쳐예정시간인 9시50분 남산야외음악당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영구행렬이 지나는동안 교통경찰은 다른 차량통행을차단, 정리했다.
고인의 맏아들 중렬씨는『돌아가신분의 뜻이 그렇지않은데 왜 교통을 차단시키게하느냐』 고고말하기도했다.
고인이 타던 승용차에는평소 고인이 아끼고 좋아하던 모자·안경·「골프·세트·「링컨」 동상·벼루·구두·병풍·묘법포화경을실었고 유해와 영구차는 태극기로 덮여졌다.
국회의사당앞
고인이20여년간 몸담았던 국회의사당앞에서 2분동안 정지했고 당사앞에서 10분간의 노제를 지냈다.
국회앞에서 사무처직원들이 모두나와 묵념을올렸고 당사앞에서 1천여 당원과 시민들이 모인가운데 김상진의원이 고별사를읽었다.
남산야외음악당
백범김구선생의동상이서있는 영결식장에는 정일권국회의장·김종비총리·이효상공학당의장등정부·여당간부들과 대부분의 국회의원·당윈·시민을 포함, 1만5천여명의 조객이 참석했고3발의 조모와 경찰악대의구 슬픈진혼주악이올려퍼지는가운데 고인의명복을빌었다.
영결식이 거행되는 상오10시를 기해 신민당의 전국73개 지구망에서도 일제히 추도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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