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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9천만 원 횡령범으로 수배되어 오던 인천 농협의 박 대리와 여직원은 결국 자수하였다.
박 대리의 진술에 의하면 범행 동기는 인사에 대한 불만에 있었다고 한다. 아리송한 얘기다. 「클리블런드」대학의 심리학자「켄·로저즈」에 의하면 범죄 심리학상 30대가 가장 위험한 고비라고 한다.
30대에 가장 많은 결혼이 파경되고, 직업상의 탈선이 생기고, 또 사고나 자살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서 인생이란 뭣인지, 자기가 뭣인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에 잠기기 때문이다.
이런 때 사람들은 대체로 두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그런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형이다. 그리하여 「골프」를 치거나 TV를 보거나 술로 울화를 달래거나 한다.
또 한 유형은 자기는 죽어도 사장 감이 못되며, 자기 자식들에게도 출세할 재질은 모자란다는 냉혹한 현실에 순응해 나간다.
예금 유치를 아무리 많이 한다고 승급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현상에 순응하지 못한 박 대리의 나이도 37세였다. 만년 대리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삐꺽하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한 교육을 받고서도 자기의 범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될지를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1억에 가까운 거금을 상당한 시간을 거쳐 빼돌리던 그들이 도주 후의 계획을 일절 세우지 못했다는 것도 상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인사에 대한 불만에서 범행했다는 동기에도 설득력이 전혀 없다. 공을 몰라주던 소장에 대한 앙갚음보다도 애인과의 도피 생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고 실토했다면 오히려 그럴싸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박 대리는 대학 졸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그만하면 충분히 사리를 밝힐 만한 판단력과 사고력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옳다. 평소의 집무 태도도 매우 성실했던 모양이다.
그렇던 그가 왜 그처럼 엉뚱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그 만큼 사회가 도의적 복원력을 잃은 때문인지.
도피에 지친 끝이라 박 대리나 여 직원은 이제 오히려 홀가분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인 것만 같다.
은행 관리의 허술한「메커니즘」에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은행 범죄가 빈번한 것을 보면 역시 은행 안의 맹점이 하나 둘이 아닌 모양이다.
당초에 농협 쪽에서 발표한 액수는 9천18만원이었다. 그러나 박 대리의 진술에 따르면 모두 9천2백62만원이었다. 1백44만원이나 차이가 있다. 몇 백만 원 정도의 횡령쯤은 찾아내기조차 어렵다는 얘기로도 들리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8천만 원은 들치기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며칠 사이에 두 사람이 깨달은 바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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