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 재발견되는 판소리|그 중흥을 위한 제언|정병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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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 주말에는 두 곳에서 판소리 예술의 큰 잔치가 베풀어진다. 그 하나는 판소리학회와「브리태니커」한국지사의 공동주최 월례 판소리 감상회(정권성의「심청가」·22일「브리태니커」사) 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창극단의 수궁가 공연 (22일∼26일 국립극장)이다. 실기진의 실의와 청중의 몰이해로 한동안 쇠퇴일로를 걷던 판소리예술이 근자에 와서 겨우 진가가 재발견돼 가고 있는 것은 평소 이 방면에 관심 있는 국학도의 한사람으로 적이 흔쾌한 일이다.
이제 판소리중흥의 문턱에 서서 몇 가지 문젯점을 들어 올바른 전통예술의 계승방향을 생각해 보려 한다. 첫째로 판소리는 본질적으로는 전통적 민간음악의 한 양식이다. 그리고 그 특징은 서사적인 일정한 줄거리를 사실적인 표현기법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가장 정밀한 성악곡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판소리음악은 가사내용의 전달이 가능한 우리들 한국인에게는 일종의 표제음악(Programme Music)으로서의 구실을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기대음악(Absolute Music)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는 비유가 가능할 만큼 고도한 예술성을 지닌 음악예술이라 하겠다.
따라서 전통적인 판소리 창을 공연하든 새로운 창극으로 공연하든, 판소리 예술이 지닌 본질적인 판소리의 음악성이 결코 경시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왕왕 우리는 음악적인 기량을 연마하지 않고 대담하게 청중 앞에 나서는 출연자나 비루한 아니리를 늘어놓음으로써 청중의 환심을 사려는 실기자를 목격하는 것은 판소리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일부 청중들은 판소리음악이 지닌 예술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루한 아니리에 박수를 보내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도 결코 판소리예술의 올바른 계승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생각할 문제는 근자에 와서 판소리예술을 감상하려는 청중의 세대가 교체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여 지난날 판소리를 즐겨 하던 세대보다 새로운 청중 즉 청년층이 훨씬 많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하해야 하겠다.
그런데 이 새로 형성돼 가고 있는 청중들의 감상태도를 어떤 방향으로 정착시켜 갈 것인지가 문제다. 지난날의 낡은 청중들의 병폐라 할 끽연·잡담·유흥 등 반동은 말끔히 씻어졌으나 이른바「추임새」까지 없어진 것은 적이 아쉬운 일이다. 물론 이 추임새란 일조일석에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기성세대나 고수의 추임새를 유심히 귀담아 들으면 부지부식간에「얼씨구」「좋다」소리가 퉁겨 쳐 나오게 될 것이다. 다른 불순한 소음을 추방하고 멋있는 추임새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젊은 청중들로 짜여진 소리 마당이 하루 빨리 정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국문학·서울대문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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