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석유·원자재 파동 뒤의 품목별 현황|합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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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70∼71년의 불황 때에도 뼈저리게 체험한 일이지만 한국의 합판업계는 괭이의 생리와 흡사하다.
채찍질을 멈추면 금새 쓰러지듯 수출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단박 빈사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작년에 2억8천6백43만「달러」어치를 수출, 64%의 신장율을 기록한 합판업계는 지난 l월까지도 계속 호조를 보였다.
1월의 수출실적은 2천6백71만「달러」로 73년 동기보다 1백34%, 당초목표액보다 70%나 많았던 것이다.
한데 이처럼 맹렬하던 채찍질이 2월에 들면서 뚝 멎자 업계는 괭이 특유의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즉 2월의 수출실적이 1월 수준의 50%, 월간목표액의 60%인 1천3백95만「달러」로 떨어지자 국내시장의 품귀상태가 일시에 해소되고 공장은 조업단축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것이『시련의 첫 걸음』이라고 말한다. 합판의 대부분을 소화하는 미·일 시장의 경기가 반전되지 않는 한 가시밭 길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미 정부는 올해의 주택건설투자가 작년대비 35%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고 일본 역시 총수요억제를 경제시책의 대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균형이「바이어즈·마키트」로 기울자 미·일의 수입 선에서는 가격인하까지 종용하고 있다.
업계에 의하면 종래 84「달러」10「센트」하던 소판(4·4·8규격 1천 평방「피트」기준)을 무려 10%나 싼 75「달러」69「센트」에 발주하는 형편이라 한다.
합판업계는 지난 2월 한달 동안은 이와 같은 가격인하 종용을 뿌리쳤지만 3월에 들면서 이미 2∼3개 사가 굴복할 기미다.
당장 운전자금이 없기 때문에 적자인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는 것이다.
합판의 원가구성은 70%가 원목 값이다. 한데 바로 그 원목 값이 작년 1월 입방m당 43「달러」에서 1년만에 93「달러」로 급등했다.
일부업자의 출혈수출이 얼마나 가혹한 시련인가는 이와 같은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합판의 경기「사이클」은 주택건설「붐」의 그것과 비슷한 3년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합판업계는 3년마다 한번씩 진통을 겪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와 같은「일반상식」에 대해 업계는 물론 업계를 지도하는 정부당국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올해의 경기전망이 명백히 내다보이던 작년 하반기에도 설비확장을 거듭, 73년보다 30%가 늘어난 연 생산능력 55억 입방m에까지 이르고 있다.
합판의 공식 가득률은 23%나 각종 간접 지원비를 제하면 실제 가득률은 17%선 밖에 안 된다. 다시 말해서 합판수출은 외형에 비해 그다지 실속 있는 분야가 못된다는 얘기다.
반면 원목의 비축 등에 방대한 운전자금이 필요하므로 일단 불황에 빠지면『순식간에 도산의 위기에 직면한다』고 D목재의 한 간부는 말했다.
어쨌든 업계에서는「앞으로 닥쳐올 더 큰 파도」를 넘기기 위해 원목수입적립금의 폐지·수출금융기간의 연장 등을 관계당국에 호소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혜택이 내려지더라도「상당수가 탈락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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