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두산重 이후 노사관계 어디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두산중공업 사태의 해결이 노사관계에 봄을 몰고 오지는 못할 전망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한 선례를 남긴데다 협상 파트너로 개별 사업장 노조가 아닌 상급단체를 택한 것이 오히려 파업을 장기화시키거나 극단으로 치닫게 할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산별교섭 길 열어줘=정부는 두산중공업 사태를 중재하면서 민주노총 및 금속노조를 협상대상으로 택했다. 이는 사실상 교섭체계가 노동계의 요구대로 산별교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노동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해결과정에서 상급단체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길을 터줘 분규 사업장은 상급단체에 기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재계는 산별교섭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노조에 대해서만 반쪽짜리 '산별조정'을 하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개별 사업장에서 분규가 발생했을 때다. 노조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풀기 위해 상급단체의 지휘에 따라 파업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

산별노조가 나설 경우 현장의 목소리보다 정치적인 의도나 입김이 강하게 작용돼 강경으로 치닫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 다른 기업들에도 불똥이 튀게 된다. 결국 개별 사업장의 분규가 노동계와 재계의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공중에 뜬 노사 자치=참여정부의 노사 관계 기조는 '노사 자치주의'다. 그렇지만 노사 양측의 세력 균형을 중시하는 만큼 두산중공업처럼 개별 사업장에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시장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것에는 정부가 신중하게 대처하겠지만 집단 간 이해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갈등은 정부가 적극 나서서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노사 양측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설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노사 자치'와 '정부 조정'이라는 상반된 정책 중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노사 자치 원칙이 깨질 가능성도 큰 셈이다.

◇손발 묶여가는 재계=두산중공업의 분규 해결을 계기로 불법파업을 한 노조원에 대한 사측의 손배.가압류 조치가 크게 제한받을 전망이다. 불법파업에 대처할 수 있는 사용자 측의 카드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지난 13일 노동관계 장관회의에서는 "불법 파업이라도 비폭력일 땐 사용자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묻기 위해 근로자에게 하는 손배.가압류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해 재계는 또다시 수세에 몰리게 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적 조치 이외에는 노조에 대응할 수단이 없는 기업으로서는 정부와 노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에서 드러난 사용자 측의 부당노동행위도 재계에는 족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에 대한 중재에서 정부는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지적하며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은 다른 기업들의 부당노동행위 사례를 폭로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앞으로의 노사 관계는 파업 등의 극단적인 상황을 사전에 어떻게 막느냐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하현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