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한총련 利敵 규정… 시대 안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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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이적(利敵)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총학생연합회(韓總聯)의 사실상 합법화를 재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측은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사회의 이념 좌표를 옮기려는 신호탄이 아니냐며 즉각 반박했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盧대통령은 "어제 TV에서 (수배된) 한총련 학생들이 건강검진을 받는 장면이 보도됐다"며 "아직도 한총련이 계속 불법단체냐"고 물었다.

곧바로 이어진 법무부의 업무보고에서 盧대통령은 '이적단체 한총련'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다며 "검찰도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라"고 했다. 이적단체의 족쇄를 풀어주고 수배자를 사면하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도 지난 14일 한총련 장기 수배자 가족 대표와 정부 청사에서 만나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사면에 맞춰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그러나 한총련도 강령과 규약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완화하거나 향후 활동 방향에 대해 국민에게 뚜렷하게 밝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한총련은 남한의 테두리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조해 실정법상으로도, 국민 정서상으로도 명백한 이적단체"라며 "盧대통령이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된 단체의 특별사면까지 인식하는 게 아닌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최병국(崔炳國)의원은 "한총련은 지금이라도 북한을 추종하려 했던 게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도 안하고 있다"며 "그냥 푼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며 소정의 절차와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임광규(林炚圭) 변호사는 "한총련 간부를 기소하는 것은 검사가 우리나라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해 내리는 결정"이라며 " 盧대통령의 발언은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며, 이는 검사의 직무유기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변(民辯)의 장경욱(張慶旭)변호사는 "남북관계가 발전한 시점에서 한총련을 북한과 주의.주장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적단체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한총련을 사회 위협세력으로 보기에는 활동이 매우 위축된 만큼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총련이란=1993년 4월 출범했으며 현행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는 게 법원과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1997년 5기 때부터 한총련 집행부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등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이듬해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대학생 개인이 아니라 각 대학 총학생회가 가입하며 ▶총학생회장▶부총학생회장▶동아리연합회장▶단과대 학생회장에게 대의원 자격을 준다.

가입 대학은 2백여개 정도다. 지난해 10기 대의원 8백여명 중 수배된 학생은 1백10명선이다.

고정애.김원배.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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