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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의 노리개, 주택금융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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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창희
윤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주택’과 ‘금융’이 절반씩 섞였다. 직접 모기지론을 취급하니 시중은행과도 유사하다. 이런 하이브리드 특성 때문에 사장 자리를 두고 영역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2004년 출범한 주택금융공사 얘기다. 변동금리 단기대출이 대다수인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을 선진국처럼 장기 고정금리로 바꾸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출범한 공기업, 정확히는 준정부기관이다.

 초대 사장은 민간 은행 출신(정홍식)이 맡았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주택은행 부행장 출신이 금융공기업 수장으로 오는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당연히 모피아(경제관료 출신) 몫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민간인을 모셔온 ‘괘씸죄’에 걸려 이 회사는 금융당국과의 업무협조가 원활치 않았다는 게 직원들 기억이다. 예를 들어 당시 시급했던 증자가 계속 미뤄진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른 탓인지 ‘이변’은 다시 생기지 않았다. 이후 어김없이 관료들의 나눠먹기가 이뤄졌다. 유재한 사장이 2대 사장 자리에 취임하며 모피아 깃발을 꽂았다. 한데 그는 1년 만에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자리를 던졌다. 바통은 금융감독원 출신 임주재 사장이 이어받았다(이후 낙선해 돌아온 유 사장에게 모피아는 다시 정책금융공사 사장직을 맡긴다).

 임 사장이 3년 임기를 마친 뒤 주택금융공사에는 다시 정통 모피아 출신 사장이 왔다. 경력이나 평판 등 스펙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신경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실은 임명 과정에서 스크린되지 않았다. 취임 후 그가 부속실 옆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번번이 찾지 못했을 때, 또는 ‘전세’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직원들은 쉬쉬했다. 결국 주위 만류를 무릅쓰고 한 케이블방송에 출연한 장면이 관계당국에 우연히 포착된 뒤 그는 취임 한 달 만에 물러났다. 눈앞에 다가온 국정감사까지 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해프닝 이후 모피아는 사장 자리를 양보했다. 다음은 국(國)피아(국토교통부 출신) 차례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규제의 돌격대장을 맡았던 전력 탓에 주춤했던 서종대 사장은 국토부 몫을 주장한 친정의 지원에 힘입어 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런데 서 사장은 지난 16일 돌연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했다. 이런 저런 추측이 돌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물밑으로 한국감정원장 공모에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임기가 10개월밖에 안 남은 사장 자리는 버리고, 3년 임기가 새로 시작되는 공공기관장을 한 번 더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올해 열 돌을 맞는 주택금융공사는 이렇게 해서 지금 여섯 번째 사장을 기다리고 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부처 간 나눠먹기, 허술한 인사 검증, 선거 출마를 위해 또는 공공기관장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헌신짝’처럼 자리를 내던지는 무책임한 행태들. 도대체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는 왜 있는 걸까, 국민을 위해서일까, 관료를 위해서일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