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병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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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군 훈병 1백 50여명이 익사 혹은 실종된 것으로 알려 졌다.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을 가망성은 거의 없다. 그것은 수중에서 일어난 사고이며, 또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산간에서 실종된 경우와는 다르다. 비통한 일이다.
실로 상상을 절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원인은 아주 단순한 부주의에 있었다. 신병들은 교육을 마치고 해상에 머물러 있는 LST함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 함선은 육지와 불과 1천 7백m의 거리에 있었다. 그 사이를 YTL이라는 철선을 타고 건너가야 했다. 바로 이 배가 침몰한 것이다. 기지와 동떨어진 아득한 심해에서 작전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상황은 아주 단순했다.
신병훈련소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때의 일들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격연습을 할 때면 교관들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안전에 신경을 쓴다. 빈 방아쇠를 몇 번이라도 당겨보라고 고함을 지른다. 조그만 부주의도 용납하지 않는다. 사격장에서의 긴장감이란 이루 형언할 수도 없다. 그것은 사고를 염려한 배려이다.
신병훈련소에선 모든 교육과정이 그렇다. 절도와 질서와 사기를 제1조로 친다. 또 그것이 없이는 군인으로의 훈련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이번 해군 신병사고의 경우, 몇 가지 의아한 점들이 있다. 바로 그날의 천기는 바람이 드세었다. 풍속이 18m. 파고도 3m나 되었다고 한다. 관상대에선 풍속이 14m 이상이면 벌써 폭풍주의보를 내는 것이 관례이다. 해군함정에 풍속계가 없었을 리 없다.
더구나 18m의 바람이면 폭풍주의보의 기준을 훨씬 넘는 강도이다. 불과 1백 20t의 철선에 3백여 명의 병력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그 풍속이 무시된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심지어는 그날의 교육일정을 변경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고려되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사고가 해군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무질서한 군중들이 혼잡을 이룬 가운데 일어난 사고와는 정상이 다르다.
막강한 군대는 다만 그 장비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가 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군대일 때 그들은 강하다. 국민은 또 군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병역의무를 달게 받는다. 젊은이들은 그의 청춘과 생명을 서슴없이 군에 바치는 것이다.
국민에게 병역의무가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군대는 스스로 그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절도와 결백과 사명의식은 그런 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고는 뼈아픈 교훈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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