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담보·향연에 8억원을 선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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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용을 거울로 삼는 은행이 사기꾼의 손에 놀아나 거액을 대출해 준 중소기업은행 가짜담보물 부정사건은 흔히 말로만 들어온 은행대출부정의 일면을 드러냈다. 이 사건에 관련,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된 전 중소기업은행장 정우창씨(57)의 경우 더구나 8백여만원이 넘는 「커미션」까지 사기고객인 박영복씨(39·금록통상대표)로부터 받은 협의가 검찰조사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수사단서로 들통난 것은 작년 12월말. 중소기업은행이 2년 가까이 쉬쉬하면서 자체수습을 꾀해오다가 끝내는 은행감독원의 일제감사에서 적발됨으로써 발단됐다는 것.
중소기업은행은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지난 1월 박영복씨를 뒤늦게 검찰에 고발하고 대부해 준 외국부와 종로·퇴계로 지점장 등 15명의 은행관계자들을 무더기 파면, 퇴직금도 압류했다.

<6차례 걸쳐 융자>
이 사건을 담당한 대검특별수사국 윤영학 부장검사는 지난 6일 박영복씨와 동사상무 김용환씨(53) 등 2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이면을 캔 결과 은행장 정씨에게 5천여만원을 주었다는 자백을 받고 정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검찰수사에서 밝혀낸 은행의 융자횟수는 6차례.
은행측이 71년11월13일에 무역융자금조로 5천7백40만원을 내준 것을 비롯, 같은달 24일 일반 및 무역융자금 1억5천4백5만원, 또 26일에 일반자금 3천5백만원, 12월21일에 무역융자금 1천6백92만원, 72년2월21일 무역융자금 5천8백40만원, 4월15일에 무역융자금 1천9백60만원과 연체이자 등이다.
박씨가 부정융자 때 은행에 내민 담보물은 모두 6건에 7천1백81평(대지 5천7백50평, 건평 1천4백31평). 대구에 5건, 부산에 1건이다. 이중 박씨 소유의 부동산은 단1건뿐. 나머지는 박씨가 얼굴도 모르는 남의 것을 이용한 것이고 담보능력도 융자액에 휠씬 미달되는 것이었다. 박씨는 지난 71년3월께 자기회사 전무 정지영씨와 상무 김용환씨를 시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대구·부산의 법원 등기과에서 남의 등기등본을 멋대로 떼어오게 했다. 그런 뒤 이 등본의 표제난과 「갑」 「을」구난을 떼고 말미난만 남기고 사법서사회에서 입수한 등기부등본용지로 대체, 소유권자를 박씨 회사명의로 고쳐 대구지법 등에서 발행한 것처럼 송두리째 위조했다는 것이다.

<「달러」빚 내 예금>
박씨가 이 같은 엉터리 서류를 은행에 냈으나 직원들이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박씨가 은행장실을 무상출입하고 직원들을 잘 다스려 놓았기 때문. 박씨는 은행의 신용을 얻기 위해 융자받기 전에 10여억원을 은행에 정기 예금했다는 것이다. 이 돈은 명동 사채시장 등에서 이른바 「달러」이자를 주고 꾸어다 댄 것.

<2년 동안 "쉬쉬">
박씨는 또 은행대부관계직원에게 매일같이 향연을 베푸는 용돈을 물 쓰듯 했다는 것이다.
박씨가 향연을 베풀던 서울 성북구 삼선동 모 비밀요정은 바로 박씨의 내연의 처가 마담이 되어 운영하는 요정임이 검찰수사에서 밝혀졌다. 요정에서 드는 음식재료비는 은행손님들이 뿌리는 「팀」으로 충당하고도 남았다는 얘기.
또 은행에서 박씨를 신뢰한 것은 박씨가 71년에 인수한 금록통상의 전년도 수출실적이 좋았기 때문. 이 무역회사는 「밍크」수출회사로서 71년에 연간 실적이 50만「달러」선에 이르렀다는 것. 검찰은 이 무역실적이 어떻게 올려갔는지도 의심을 두고 수사중인데 은행측은 무역실적을 믿고 담보관계서류를 은행지정사법서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박씨가 꾸며오게 할 정도의 신용「미스」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검찰은 박씨가 사기한 돈 가운데 1백만「달러」가량을 해외에 유출했고 남은 재산은 1억원도 안되는 것으로 밝혀냈다.
박씨가 회장으로 되어 있는 회사는 금록통상을 비롯, 현대통상·부흥통상·정화주식회사 등 7개회사.
검찰은 융자액이 5백만원이 넘으면 은행장승인사항인데 담보물「체크」를 하지 않았고, 또 72년5월에 박씨에게 속은 줄 알았으면서도 계속 72년 8·3조치 때 대환조치를 않았다는 점등을 들어 정씨의 배임여부에 대한 수사도 계속 펴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정씨는 박씨로부터 대출금에 대한 「커미션」은 받을 때 보수 등은 전혀 받지 않고 현찰만 받는 등 증거를 지능적으로 없앴기 때문에 박씨가 주장하는 5천여만원 증혐의도 15일 현재로는 8백50만원분만 증거를 잡았을 뿐이라는 것. 수사관이 서대문구 연희동 정씨집을 수색하자 2백만원 상당의 1·7「캐러트」짜리 「다이어」반지와 3백만원짜리 「에머럴드」순금거북·금수저 등 2천여만원의 귀금속이 쏟아져 나왔고 타인명의의 예금통장이 나왔다.
정씨가 구속집행직전 검찰에 나온 정씨부인은 가택을 수사했던 수사관을 향해 「남편은 국가충신인대 잘해 먹나 두고보자』고 말하다가 한 수사관이 금수저로 밥을 먹는 사람이 충신이냐』고 되받자 주춤 하더라는 것이다. <이원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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