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그의 문학과 생애인간양심과 진실을 외쳐온 자유정신의 거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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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살한 지주 아들>
【모스크바AFP동양】「솔제니친」은 56년전 북부「코키서스」의「키슬로보트스크」에서 자살한 지주의 유복자로 출생했으며 과학도였던 그는 생계를 위한 직업을 택하느냐, 문학의 길을 가느냐의 기로에서 오랫동안 망설였다는 것을 그 자신이 실토한 바 있다.
그의 결단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더욱 지연되었다. 「레닌그라드」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위로 승진된 후 그는 1945년에 정치범으로 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그는 재판도 받지 않고 8년 체형을 받았다.
「솔제니친」은 후일「나는 그 당시로서는 금지되고 있던 사상을 사실 피력했었기 때문에 내가 무고하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수용소생활 비판>
「스탈린」의 사망과 더불어「솔제니친」은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으나 그는 다시 추방 령을 받았으며 수학을 가르치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이 때 암에 걸려 고생했으나 다행히 오랜 치료 끝에 암을 퇴치했다. 「솔제니친」이 자유로운 몸으로 복권된 것은 소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가 열린 1957년이었다. 다음해 「솔제니친」이라는 이름은 소련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퍼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의 첫 작품『「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는「스탈린」시대의 집단수용소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위대한「러시아」작가들의 전통을 부활시켜주었다.
7년 동안「솔제니친」은 모든 그의 권리를 누렸다.

<미 출판은 해외서>
기독교신앙이 나타나있는『「마트리오나」가』와『「크레체토바」역의 사건』등 두 소설작품이 이 동안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64년에 이르러 희곡「사슴과 매춘부』, 소설『제1주기』등이 출판되지 못했다.
『암 병동』도 출판되지 못했으나 원고를 해외로 내보내 출판했다.
『제l주기』나『암 병동』을 해외에서 출판함으로써「솔제니친」은 소련작가동맹과 공공연히 대립케 되었다.
소련작가동맹은 그를 지지해 온 서방작가들을 규탄하도록 그에게 요구했다.「솔제니친」은 1967년 작가대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소련정부의 출판자유억제조치에 항의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솔제니친」은 l969년 11월 소련작가동맹으로부터 추방되었고 이어 관영신문의 「솔제니친」공격이 뒤따랐다.

<지식인 성원 얻어>
「솔제니친」의 완강한 저항자세는 많은 소련시민을 그로부터 멀리하게 했으나 그는 아직도 일부 지식인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1970년「솔제니친」문학「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그는 다시 귀국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여「스톡홀름」의 수상식 참석을 거부했다.
1971년「솔제니친」은 그의 체험수기가 아닌 유일한 소설인『8월14일』을 해외에서 출판했으며 이로 인해 소련신문의「솔제니친」공격이 재개되었다.「파리」의 YMCA출판사가 작년 12월28일「솔제니친」근작『수용소군도』를 출판한 이후 소련신문들이 펴온 맹렬한「솔제니친」규탄운동이 급기야는 그의 체포와 추방을 빚어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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