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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단에 의한 물가 억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자유제 경제에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가격기능을 통해서 수급조절이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자원의 최적배분이 가능해 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절기능은 독점체제의 강화로 말미암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분배 관계를 악화한다는 문젯점이 있어 가격기능에만 전적으로 기대해서도 아니 된다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된 바라 하겠으나 그렇다고 가격기능을 정부가 완전히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격기능을 주축으로 하고 그것이 파생하는 모순을 다른 정책 수단으로 보완하는 것이 자유제 경제의 정책논리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책은 어찌하여 좀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면 쉽사리 원칙을 버리고 방편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밀가루 값 문제만 하더라도 사리는 너무나 분명하다. t당 86 달러 기준에서 국내가격을 무리하게 묶어두려 했기 때문에 보조비 조로 재정 적자가 1천 2백억 대 라는 천문학적 숫자에 달했고 값을 올릴 때는 그것을 모개로 올려 주어 오히려 소비 조정만 어렵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한꺼번에 60%를 올려 줌으로써 파생하는 물가 압력도 클 뿐 아니라 그래도 연간 재정 적자 요인은 6백 60억원이나 남아 있다. 그렇다고 쌀값보다 실질적으로 더 비싸진 밀가루가 말릴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없다. 결국 쌀 소비가 늘어나서 쌀값이 다시 올라야만 밀가루 소비가 가능할 것이므로 싼 밀가루 값을 유지하려고 했던 정책은 이제 결과적으로 쌀 소비를 촉진하게 되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양정의 모순이 파생시킨 이 같은 문젯점과 같은 성질의 정책이 또 유류와 전력에서도 반복되어서는 아니 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가압력을 고려해서 유류 가격은 곧 조정해 주되 전기요금은 연내에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밀가루 값과 쌀 소비의 관계와 같은 교란 요인을 또 다시 조장하는 것임을 뜻한다.
기름 값이 전기요금보다 싼 경우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이득이 있다고 그런 일을 시도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기 요금이 기름 값 보다 더 싸면 기름을 쓰던 곳에서 모두 전기를 쓰게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석유 곤로는 전기 스토브로 대체 사용되는 것을 막을 길이 없고, 그것은 배전 체제를 어지럽힐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저 전압을 유발해서 전력조차 효율적으로 이용 못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또 에너지 소비면에서도 그것은 유류 소비의 절약이 아니라, 간접 소비 촉진 책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경제에 손실을 주는 것이다.
물가 하나만 생각한다면 전기 요금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나 자원의 최적 사용이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약이 아니라 손실을 증가시키는 역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싯점에서 물가 정책이나 경제 정책에 방편 적인 기교는 국민 경제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한다. 국제적으로 밀려오는 원가압력은 그때그때 소화해 흡수하는 것이 국민경제를 위하는 길이다. 오히려 국내정책이 그러한 물가압력을 부채질하지 않고 상살 시켜 나가는 것이 정책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 막을 수 없는 원가 압력에 도전함으로써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보다는 그에 순응하되 그 여파를 다른 방식으로 완화해야 한다.
8%의 성장을 위해 계속 국내 여신을 늘리고 통화량을 늘려 밀려오는 원가압력에 구매력까지 가세 시켜서는 아니 된다. 원가를 방영시켜 파생되는 압력을 구매력의 흡수로 완화시키거나 상살 시킴으로써 새로운 가격 체제하에 안정을 기하는 것이 순리이다.
물가정책의 차원을 높이고 종합성을 강화해서 정상적인 정책을 집행해 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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