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겪은 출판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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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후반부터 혼란을 일으켜온 용지난으로 새해 출판계는 어느 때 없이 큰 진통을 겪고 있다. 유류파동이 몰고 온 출판계의 용지파동은 어쩌면 출판계의 존립이 좌우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질 만큼 극심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출판 전문가들은 74년을 스스로 출판계 자연도태의 해 또는 출판 부재의 해라고 말할 정도로 새해 출판계의 진로는 암담하기만 하며 앞으로 성수기인 3, 4월에는 더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침체의 요인은 무엇보다 첫째 용지파동이며 둘째 용지 이외의 제작 원가의 상승, 세째 일반 경기의 침체에 따른 도서 구매력의 감퇴를 들 있다.
출판물 제작비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용지는 값이 73년 l월 보다 1백% 이상이 올랐으며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품귀 상태. 실제로 출판용지인 백상지 중절지는 연당 3천 6백원에서 8천 5백원으로 올랐고 싯가는 언제 안정이 될지 예측 불허 상태다.
더우기 수요기가 아닌 1월에도 품귀 상태며 특히 군소 출판사들은 종이를 확보 못해 조업 중단 상태. 출판문화협회는 출판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군소 출판사를 위해 이들을 소량실 수요자로 보고 매월 출판용지를 직접 배급해 줄 것을 상공부에 건의했다.
출판원자재인 종이 이외에 조판비·제본비 등 제작 공임이 지난해보다 30%올랐으며 또 일반 독자층의 긴축 가계부로 인한 구매력 감퇴가 출판계의 불황을 더욱 부채질할 전망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 출판계는 새해 들어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이미 제작 중이던 출판물 출고를 꺼리고 있고 각기 기획물들을 뒤로 미루고 있으며 새로운 기획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실제로 출협의 납본과 중앙도서전시관의 출고량이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50%정도 줄어들고 있다.
제작비의 상승에 따라 책값의 인상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제작 원가의 상승률만큼 책값을 올릴 수 없는데 고민이 있다. 책값을 많이 올리면 그나마 있던 독자층들도 책을 사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출판사들은 정가를 20∼30%씩 인상했으며 나머지 출판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인상 선이 결정 안돼 주춤하고 있다. 또 어떤 출판사는 다음에 어떻게 될지 몰라 아예 정가를 표시하지 말고 싯가대로 받자는 주장도 있다.
실제 제작원가는 50∼60% 올랐지만 책값은 대체로 20∼30% 오를 전망이다. 그 다음에는 제작비를 기술적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일반 독자들이 잘 모르는 종이질을 낮추거나 호화 장정을 조금 줄이는 방법 등이 예상된다.
용지파동과 책값 인상 등에 따라 새해 출판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닥쳐올 전망이다. 막대한 자금과 용지를 필요로 하는 대형 출판물이 어려워지고 그 대신 조촐한 단행본들만이 늘어나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붐을 이루어온 전집 월간물은 거액의 제작비를 장기 투자해야 하므로 그 보다는 대금 회수가 빠른 제품 개발과 판매망 개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출판인들은 이러한 출판 경기의 침체가 출판풍토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출판행위 자체가 힘들어 무질서한 출판사의 난립도 없어질 것이고 시시한 전집물들도 나올 수 없을 것이며 덤핑시장도 퇴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출판사간의 무모한 경쟁 또는 해적 행위 등 출판계의 고질이 제거되면 올해는 출판사의 내실을 기하고 정비를 하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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