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정보까지의 농지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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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역사적으로도 농지 제도와 농업생산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질 문제이다. 우리의 현행 농지제도는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를 청산시킴으로써 농민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그것을 통해 주곡의 증산을 기한다는 뜻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확립된 제도이다. 이는 호당 노동력을 전제로 해서 경지이적의 상한을 정한 것이므로, 이를테면 토지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공업화 과정에서 이농현상이 늘어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소작농이 출현하고 있어, 농지 개혁의 당초 취지가 크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현행 농지제도는 주곡농업·생존 농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농가의 경제력이 크게 향상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자력으로 생산력의 획기적인 증진을 가져올 수 있는 투자를 할 수도 없다는 결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그 동안 기업농 문제가 제기되었고 도시 자본을 유치해서 농업 생산력을 크게 제고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자주 대두했었다.
또 이농에 따른 노동력의 감소를 보충키 위해 농업 기계화가 추진되기도 했었는데 이에 따라 기업 <기업농=농업기계학>이라는 일종의 도시화한 사고방식이 유포되어 그것이 마침내 농지제도의 조정이란 문젯점으로 집약된 것이다.
농수산부가 23일 농지소유의 상한선을 현재의 10배인 20∼30정보로 확대하겠다고 한 것도 그 근저에는 이 기업농=농업 기계화라는 도시화한 사고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나라 농촌 구조의 실태를 똑바로 직시할 때 과연 그것이 식량증산에 반드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첫째, 농지의 절대적 부족을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농촌 및 농지실정에서 토지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농정을 버리고, 자본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농=농업 기계화가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지지소유의 상한선 확대 문제는 이러한 의문이 해명된 다음에야 비로소 그 타당성이 논의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농업 기계화는 단위 면적상 수확고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 조방농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농가 호당 경지면적이 1정보에도 미달되는 농촌구조 속에서 농업 기계화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기껏해야 경운기나 동력 탈곡기 정도를 도입하는 것을 가지고 농업 기계화라고 말할 수 있겠으며, 또 그 때문에 농지소유 상한문제가 제기 되어야할 것인가.
물론 이농에 따른 농번기 인력 부족을 보완하는 정도를 뜻하는 현재의 기계화는 필요한 것이지만, 한국 농업의 기계화가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경운기 정도라면 현재의 농지 제도하에서도 가동일 수가 제한됨으로써 생기는 모순 같은 것은 공동이용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농을 위해 농지소유의 상한선을 10배로 늘리겠다는 생각도 적어도 주곡의 증산이라는 견지에서는 별로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주곡분야에서 기업농 방식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이 나라 농업 경제에 관한 한 하나의 상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기업농을 위해 30정보의 농지소유를 허용한다면 그들은 필경 주곡생산 대신에 그보다 수익성이 좋은 특용작물이나 고등원예 등에 주력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은 식량배급 율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 생산성 중심의 농정이 우리의 농지 실정이나, 식량 사정으로 보아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긴 설명의 필요가 없다.
끝으로 현재의 농가 경작 규모로 보아 기업농 및 농업기계화가 성공한다면 2백50만 농가 중 2백만 호 이상의 농가는 이농을 하든지. 농업 노동자가 되든지 간의 양자택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기업농 및 농업 기계화가 성공키 위한 조건은 무엇이며 또 그 시기는 언제쯤이 될 것이냐 하는 엄밀한 검토 없이 그저 막연히 기업농기계화가 필요하니까 상한선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은 너무도 무책임한 것이다.
요컨대, 조방 농업이 가능한 미국이나 남미의 경우, 그리고 산업노동자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이농 촉진책을 써야하는 일본의 경우와 우리의 그것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적어도 상당기간 우리는 토지 생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 집약적 주곡 농업 체제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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