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통보」로 맞은 쓸쓸한 구정|화전민은 새 경작지가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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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춘성군 사북에서 강원 특별취재반=이량·김광섭 기자】강원도 화전민들은 새 경작지가 아쉽다. 산을 일구어 생계를 이어온 도내 3만9천1백여 가구 주민들은 명절인 구정을 맞고도 우울하기만 하다. 지난해 구정만 해도 화전에서 수확한 강냉이로 엿을 고고 조밥을 지어 또 한해 풍작의 소망을 빌었으나 이제는 화전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경작지를 구해 생계를 이어야할 실정이기 때문에 올 구정은 화전생활에서 쇠는 마지막 설날. 당장 올해 떠나야할 화전민은 새 경작지가 장만된 것도 아니어서 올 설은 쓸쓸하기만 하다.
강원도는 지난 9월28일 전후 각 군에서 임산자원 보존 책으로 경사도 20도 이상의 화전 1만5천5백19ha에 대해 폐경 용지서를 발부, 입산을 막아 화전민은 경작지를 버려야만 했다.
도내 화전민은 모두 3만9천1백41가구 22만6천9백27명. 이 가운데 폐경 조치로 올해 당장 화전을 떠나야할 주민은 전체 화전민의 약1할인 4천2백4가구 2만3천2백41명이다.
이들은 삶의 터전인 화전 없이는 생계가 막연하다고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 같아 남들은 벌써 봄 농사 준비를 서두르고 있으나 대책이 없다고 했다.
춘천에서 가장 가까운 대표적인 화전민촌 춘성군 사북면 지암리의 경우, 한마을 1백89가구의 절반 가량이 마을을 떠나야할 형편에 놓였다. 당국의 방침에 따른 이주 대상자는 3분의1인 66가구. 그러나 절반 가량은 화전 폐경 후에도 올데갈데없어 그대로 눌러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암리는 화전민 촌으로서는 꽤 잘사는 마을. 규모로 보아도 대관령 다음 가는 곳이고 생활 수준으로도 손꼽혀왔다는 것이다.
춘천에서 불과 25km. 곳곳에 「화전정리」라고 쓴 붉은 「페인트」표지판이 박혀있다. 「버스」는 춘천을 하루 3왕복하고 있다. 도시생활에 인접해 있는 비교적 알뜰한 이 화전마을에 시련이 닥친 것이다.
11식구를 거느린 신혁봉씨(55)는 지난봄 화전에 표고를 재배해 놓았으나 산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여 큰 일이라고 한숨만 내쉬었다.
이장 이정구씨(45)는 『산림을 보호하는 방침은 좋으나 별다른 대책 없이 시한도 정하지 않은 채 이주각서만 받아 갔기 때문에 화전에 의지해 생활해온 주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면서 빠른 시일 안에 화전민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이 마을 1백89가구 중 화전 없이 지낼 수 있는 집은50여 가구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화전과 수도작을 함께 하는 실정이어서 화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집은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마을은 가평군과 경계를 이루는 화악산 산중의 단독가옥 화전민들을 지난68년부터 세 차례에 나누어 하산, 집단 이주시켜 1백89가구로 늘어난 것. 이주 당시에는 당국에서 연립주택을 지어 주었고 마을부근의 국유지를 개간, 3천 평 또는 4천5백 평씩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도 산 속 깊숙이 출입 경작을 계속, 멀리는 30리나 떨어진 산 속에 화전을 일구어 놓고 있다. 따라서 가을수확 때는 춘천에서 「트럭」을 빌어와 수확물을 운반해낼 정도.
70년5월 화천에서 이곳에 옮겨와 화전과 전답을 함께 짓고 있다는 안택동씨(57)는 이곳화전민들은 적어도 5일갈이 정도의 화전을 갖고 있어 50가마이상 수확하고 있다고 말했다(하루갈이는 소가 하루 종일 갈 수 있는 산전을 기준 한 것으로 2천 평 가량). 주로 콩·옥수수·팥·감자 등을 심는다. 무를 심으면 하루갈이의 화전에서 2「트럭」은 나온다고 이곳에서 나오는 화전채소 역시 대관령의 화전채소 다음으로 많다. 지난해에는 무 한「트럭」에 평균6만원을 받아 경비 3만원을 빼고 3만원 가량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당국은 산림 보호상 화전정리 책에 따라 이주대상자들에게는 이주정착금 30만원씩 지원하고 현지 정착민들 중에도 연간소득이 15만원미만인 가구에 대해서는 75년까지 노임사업 및 노임살포공사·한우융자·취업알선 등 7억5천7백84만원 규모의 지원계획을 마련, 이미 73년에 5천9백84만원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토착성을 띠고 있는 화전민들은 화전만큼 토질이 좋고 당장 소득을 낼 경작지도 충분히 얻을 수 없다고 해서 이주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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