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경제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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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해 한국 경제에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에는 대체로 이론이 없으나 그러한 전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구구하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대체로 「인플레」를 감수하고, 실업이나 도산을 극력 회피해야 한다는 의견을 지지하여 8∼10%의 성장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내용상의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고압경제」의 탈피와 질적 개혁이 성장 정책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8∼10% 성장론>
이처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방안이 크게 다른 이유는 사실 인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디 있든 기복이 더욱 심해질 국제경제 동향으로 보아 성장력을 가급적 한계까지 끌어올리려는 노력에는 결코 동조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낙관적인 견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 큰 낭패가 불가피한 반면, 비관론은 적중하지 않는 경우에도 기회를 놓친다는 손실밖에 없다는 일반적 득실론으로 보더라도 파동 요인이 많은 국제 환경 속에서 우리가 구태여 모험주의를 감행할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더우기 정부나 업계가 주장하는 8∼10% 성장률이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큰 모순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태그플레이션」론을 인정하는 사실 자체가 모순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오히려 8∼10%의 성장이 가능하다면 정책의 중점은 물가에 집중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가의 상승을 전제로 성장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축적된 물가 요인>
물가가 대체 어느 선까지 올라가도 좋다고 보는 것인지를 제시하지 않고서 8∼10%의 성장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인지,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성장 지속론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이 말하여 그 동안 축적된 물가상승 요인만도 50%수준은 내재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며, 그러한 잠재 요인 위에서 다시 8∼10%의 성장을 추구할 매 물가상승 압력은 오히려 경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교란시킬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만일 8∼10%의 성장을 추구하려든다면 이미 축적된 물가요인에 추가해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분, 그리고 투자증가에 따른 추가 수요 창조분까지를 물가로 흡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나, 그러한 수준의 물가상승을 허용하는 경우 통화 금융질서의 교란, 국제 수지 적자폭의 확대를 통한 환율과 물가의 악순환을 감당키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성장을 선택하는 경우, 물가와 환율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오히려 이른바 고압 경제를 탈피하려 해도 그동안 축적된 물가 압력과 앞으로 닥쳐올 원유 가격 상승요인 및 원자재 가격 상승압력 때문에 물가상승은 불가피한 것이며, 때문에 국제수지 압력은 불황 정책을 선택해도 만족할 만큼 완화시키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불황 정책을 선택해도, 우리의 국제수지 압력이 특별한 노력 없이는 만족할 만큼 수습되기 어렵다면, 모든 정책 판단의 중심은 당연히 국제수지에 두어야한다. 그 동안에는 국제수지 적자를 외자도입·무역신용 확대로 메워갈 수 있었지만 국제 경제 동향의 역전으로 고금리시대가 지속할 뿐만 아니라 국대 유동성 부족시대가 전개될 공산이 짙은 이상 그러한 방식에 우리가 안일하게 기대할 수는 없다. 국제 환경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원유「코스트」의 추가 부담요인 5억「달러」, 양곡 수입에 필요한 외환 6억「달러」만 고려해도 국제수지를 우려해야 할 입장이다. 그 위에 우리는 비축 수입 부담이 있고 추가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감당해야한다.

<정책의 초점>
물론 수출가격 상승으로 그러한 추가부담의 일부를 보전할 수는 있지만 교역조건이 73년 하반기부터 부분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므로 수출가격 상승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모험임을 외면할 수 없다. 교역 조건이 악화되는 만큼 물량 수출 증가로 보상되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73년의 경우, 수출 증가율이 80%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역수지가 오히려 악화되는 만큼 상기할 때 수출 신장율이 둔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수술에 모든 기대를 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총 수요의 억제>
그동안처럼 국내적인 모순을 수출로 해결하던 방식에 이제 큰 기대를 걸기 어렵게 되었다면 사리의 당연한 귀결로 국내 수요, 특히 국내 소비를 억제하여 국제적 압력을 완화할 수밖에 없다. 내수 압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총 수요를 강력히 억제해야 한다. 총 수요를 억제하는 제일보는 재정투융자의 보류와 3천억원 이상에 이르는 재정적자의 해소에서 구해야 함은 상식이다.
재정이 원천적으로 추가 수요를 창조하는 이상 총 수요를 억제할 수는 없다는 뜻에서 재정이 새로운 국면에서 솔선 수범을 보여야한다. 재정이 초 긴축 태세를 갖춘 연후에 물가 동향을 보아서 금융을 신축적으로 운용해야만 민간 경제 부문에 타격이 덜 가는 것이므로 불황 정책을 합리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민간부문 중심으로 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

<현명한 불황 대책>
어차피 우리가 불황 정책을 선택해도 국제 수지압력을 충분히 회피하기는 힘든다면 국제수지압력을 극력 회피하면서도 부작용이 적은 불황대책을 추구하는 길 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불황대책을 선택하는 경우 부분적인 실업이나 도산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실업이나 도산율을 낮추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농업 생산력의 확대를 위한 투자, 석탄 등 주요 광산물 생산을 위한 투자, 그리고 도시주변 정리나 주택투자 등 수입수요를 크게 유발하지 않고 영세 근로 층을 취업시키는 투자는 총 투자 수준을 대폭 감축시키면서도, 취업률을 낮추지 않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자본 집약적이었던 기존정책을 고수하려하기 때문에 투자율을 낮출 수 없는 것이다. 대담한 정책 전환을 전제로 한다면 총 수요를 큰 모순 없이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서 74년을 경제 체질 전환의 해로 삼아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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