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우리나라 화단에서 빛을 반짝였던 철마 김중현씨의 이름이 최근 그의 유작을 통하여 새삼 부각되고 있다.
일제아래의 선전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함께 특선에 뽑히는 등 맹활약을 보였던 철마는 1901년 서울태생으로 동난 중인 1953년 부산에서 작고했다.
그는 1930년 13회 선전에서 서양화『정물』을 내어 특선한 것을 비롯하여 31년에 서양화『춘양』이 특선됐고, 35년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양부에서 동시에 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 36년과 41에도 서양화로서 특선되는 등 당시 화단에서 주목된 작가의 한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소품「스케치」『농악』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수장돼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아들 김인성씨에 의해 유작의 소재가 수소문되고 그 중 말년의 동양학 작품 5점이 풍속화로서 복제되어 나옴으로써 그의 화재가 다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인상파화풍에서 후기인상파 및 야수파경향이 도입되던 30년대의 양 화단에서는 김종태·구본웅·강신호·이창현·황술조·이인성·나혜석·김중현 제씨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당시 토지조사국에 근무하던 김씨는 수채화의 보급에도 앞장섰으나 40년대 이후에는 주로 동양화를 제작, 서화협회를 중심으로 이용우·고희동 제씨와 함께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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