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변칙정권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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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3년은 냉전시대에 사육되었던 후진국 군부가 자신의 존립을 고수하기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노골적으로 국민주권을 오손한 해였다.
처참한 학살극으로 국민들이 선택한 정부를 도괴시킨 「칠레」군부, 학생과 시민들의 반 독재 투쟁성과를 절도한「그리스」군부, 「페론」의 인기를 교묘하게 역용한「아르헨티나」군부, 그리고「사냐」신 정권의 민주화노력에「건너지 못할 강」을 파 놓은「타이」군부가 이를 대조적으로 증명한다.
물론「국민주권」의 이상이 꺾인 것은 올해 처음 겪는 경험도 아니고 군부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다.

<후진국군부의 병리노출>
사마천이『천도는 시인가 비인가』라고 탄식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권』을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73년의 이상 정권교체는 후진국군부가 갖고 있는 두 가지 병적 생리를 동시에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들의 첫 번째 병리는 극우적인 정치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칠레」군부의「아옌데」정부전복이 그 예다.
냉전체제를 생존의 터전으로 살았던 이들이「데탕트」조류를 거스리려는 이와 같은 도전은 앞으로 화해「무드」가 고조될수록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짙다.
후진국군부의 두 번째 병리는 이들이야말로 이른바「정치적 결탁」을 내릴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스」와「아르헨티나」가 보여준 악순환·「타놈」독재 등은 군부의 불필요한 거대화가 근본원인이었기 때문이다.
70년 초「칠레」에서 사상 초유의 민선에 의한 사회주의 대통령이 탄생케 된 것은 50∼60년대에 극에 달했던 중남미에 대한「양키·인터벤셔니즘」에 대한 하나의 반작용이었다.
전통적 대미 예속화로부터「칠레」경제를 독립시키고 그 과정에서 공정한 부의 재분배를 시도한「아옌데」의 노력은「카스트로」가 제시한 극좌노선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서「라틴아메리카」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심벌」이기도 했다. 극좌와 극우의 정반대방향에로의 인력 사이에서 그래도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확립해 보려던 이 실험은 그러나 무참히도 군부가 휘두르는 칼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실험의 좌절은 결국「카스트로」를 비롯한「라틴아메리카」안의 극좌세력들의 주장을 강화시켜 줌으로써 앞으로의 개혁이 비폭력적인 체제내적 방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말살하고 말았다.

<얼굴만 바뀐 구 세력 집권>
70년 선거당시 미CIA가 ITT를 통해「아옌데」의 집권을 교묘히 방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은 적도 있으나 결국 이 작업의 결정적 마무리는 극우파 군인들이「대행」해준 셈이다.
이제「안데스」의 아들들은 당분간 그들의 운명을 일단의 군인들에게 내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이「심벌」이 여타「라틴아메리카」국민들에게 제시했던 기약도 따라서 소멸되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본적지인「그리스」가 군화에 짓밟히고 있는데는 좀 특이한 일면이 있다.
2차 대전이후 공산「게릴라」의 준동으로 5년간이나 내란을 겪었던「그리스」는 50여개의 정당이 난무하면서 12번의 정부가 뒤바뀌는 홍역을 치르고 있었는데 야심적인 포병대령「파파도풀로스」가 이 문제를「해결」하려 나섰다. 망명한 국왕을 폐위하고 철권으로 나라를 짓눌러 온 그를 실각시킨「기지키스」「그룹」도 역시 국민들의 신임을 얻는데 실패했다.
여러 가지 조짐으로 보아 그들의 거창한 구국명분에도 불구하고 『제2의「파파도풀로스」』가 탄생할 가능성만 짙게 할 뿐이다.
혁명주체의 성격이 극우인 이상 그들의 장래 정책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을 것이며 오히려 일부에서는 그들이 궁지에 몰린 군정을 연장하기 위해 얼굴만 바꾸는 새로운 수법을 사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수법은 태국의「타놈」이 71년에 친위「쿠데타」를 일으킬 때 이미 하나의「모델」로 돼 버렸었다.
47년이래「쿠데타」만이 유일한 정권교체의 계기가 되었던 태국에서 독재자「타놈」은 작년부터 끈질기게 계속된 학생「데모」로 물러났다.
온갖「드라머」를 연출해 가며 10년 동안 철저한 군벌·족벌정치를 강화한 그의 비리에 지식인·학생들이 반발한 건 당연하다.

<전후 친 서방국가가 많아>
그러나 문제는 10월 정변의 배후엔 또 다른「그룹」의 군 세력이「무언의 세력」작용을 하고 있었다는데 있다.
「사냐」과도정부의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전후 친서방, 특히 친미 국가로 자처하던 나라들이었다.
「그리스」나「칠레」는 현재 극우파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며 표면적으로나마 군을 제거한「아르헨티나」와 태국에선 집권자가 가장 큰 눈치를 살펴야 할 것이 군 집단이다. 태국의 경우「사냐」과도정부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박는데 실패한다면 오히려「타놈」이상의 군부독재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많다는게 정평으로 되어 있다.

<동서화해가 독재부채질>
73년 중에 일어난 이상의 변칙정권교체현상을 국제적 냉전체제와해현상의 한 부작용으로 본다면 이는 곧 냉전체제 속에 안주해 온 군사보수세력이 새로운 국제적 화해분위기에 대해 느끼기 시작한 불안이 그러한 부작용의 직접적인 동기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동서거두간의 화해는 군소 냉전 단역들이 국내적으로 독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준 최대의 명분, 즉「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명제를 퇴색시켜 버렸다.
이와 같은 환경변화는 동시에 냉전체제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해 온 대중들에게도 독재에 항거할 수 있는 기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73년에 일어난 빈번한 변칙정권교체현상은 바로 이와 같은 양극화한 냉전체제 속의 국내적 모순이 새 질서 형성과정에서 격렬하게 노출될 것임을 알려준 하나의 신호였다. <김종호 기자><끝>
차례
①프롤로그 ②동맹관계의 재조정 ③에너지 동란 ④제3세계의 부상 ⑤키신저의 외교무대 ⑥현대자본주의의 시련 ⑦변칙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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