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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억 유로 감세" 좌파 정책 버리고 … 올랑드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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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스캔들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곤혼스러워하고 있다. [파리 로이터=뉴스1]

14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표정은 비장했다. 600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사회당 소속의 올랑드 대통령은 친기업적인 경제개혁 정책을 발표하면서 “나는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인정했다. 프랑스에서 사민주의자라 함은 좌파 사회주의 이념을 버리고 구조개혁을 용인하는 중도로 전향했다는 뉘앙스를 갖는다. 타고난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해 온 올랑드 대통령의 고백에 프랑스 사회는 또 한 번 놀라움에 휩싸였다. 최근 불거진 그와 여배우의 염문설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업의 사회보장 부담금 300억 유로(약 43조원)를 추가로 감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200억 유로 규모의 기업 세금 축소에 이은 획기적인 조치다. 합해서 500억 유로 규모의 기업부담 경감 조치는 경쟁력 제고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또 올해에만 150억 유로 규모의 공공지출을 감축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2017년까지는 500억 유로를 줄인다. 연간 4% 수준이다.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금기시해 온 노동시장 유연화도 약속했다.

 “부자를 싫어한다”며 자본주의 자체를 맹렬히 비난했던 2012년 대선 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다. 그는 취임 후에도 부유세 도입을 밀어붙이는 등 증세와 공공지출 확대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좌파 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는 ‘유로존의 환자’로 불릴 정도로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최고 수준이었던 국가신용등급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실업률은 독일의 2배인 11%에 육박했다. 이처럼 경제 침체가 계속되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를 돌파하자 정치생명을 걸고 감세정책이라는 일대 ‘전환’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그의 변신은 독일의 중도좌파 사민당을 이끌면서 ‘신중도’를 내걸고 대대적인 경제·노동 개혁을 단행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 비견된다. 그는 재임(1998~2005년) 중 어젠다 2010 등 친기업 성향의 개혁 정책을 내세워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졌지만 독일이 유로 위기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는 경제체질 개선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 좌파 정치인과 언론은 올랑드의 친기업적 개혁을 거세게 비판했다. 좌파전선 지도자인 장뤼크 멜랑숑은 좌파연대가 올랑드의 우파정책에 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은 “그는 좌파와 이별했다”(리베라시옹), “사민주의적 변혁”(누벨 옵세르바퇴르), “경영자단체인 메데프(Medef)의 승리”(르몽드)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올랑드 정부에 개혁을 촉구해 온 메데프는 이번 조치로 1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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