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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원형 잃어 가는 자연의 경관 채석가의 수성암|몰지각 상혼에 좀 먹히는 전북 부안의 비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변산반도의 금강」이라고>
원석 수출, 천연기념물의 남획에 못지 않게 대대로 물려받은 자연의 원형이 무지로 이지러지는 사례가 흔하다. 전북 부안군 산내면 격포리, 서해 속에서는 경승지로 알려진 채석강이 차차 원형을 잃고 있는 것이 한 예. 채석강은 기암괴석을 이룬 수성암으로 우리나라 팔경의 하나로 꼽힌 「변산반도의 금강」으로 불러지기도 한다. 전주에서 서해 쪽으로 86㎞.
형형색색의 수성암이 변산반도의 서단을 2㎞나 끼고 돌며 연해져 있고,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은 듯한 2백 여층의 단층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오색의 영롱한 빛을 발산, 뭇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 해 왔다. 바로 이곳에 「돈벌이」위주의 상혼이 파고들어 아름다운 경관이 마구 짓밟혀 볼품을 잃은 것이다.

<이태백 노닐던 중국이름 따>
채석강 수성암은 2년 전만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외자로 값지게 반출되어 지금은 바닥이 나다시피 되었고 게다가 새로 선착장이 「도치카」처럼 구축되어 채석장 풍경을 온통 망쳐 놓았다. 수성암은 오랜 세월을 두고 바닷물에 닦이고 씻겨져 매끄럽고 우아한 빛깔을 지녀 채석강의 암벽(해식대)과 좋은「앙상블」을 이루었다.
특히 수중에 운반 퇴적된 암반층은 맑은 바닷물에 비쳐질 때 절경. 부풍지(부안군 향토지) 등 문헌에 따르면 채석강은 예부터 절경의 극치를 이뤄 당대의 시성 이태백이 노닐던 중국의 채석강 이름을 따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는 또 채석강을『단대반석이 만권서적을 쌓은 듯하고 고송은 호수에 비치어 풍광명미의 극치이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고송은 이미 남벌 된지 오래. 수성암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문이 일자 3년 전부터 일부 돌 장수들이 몰려와 수성암을 망 10∼30만원으로 선편으로 반출해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질이 약간 떨어지는 수성암은 고급주택 장식용으로도 팔려 나갔고, 등산객들 마저 등산 때 고기구이 판으로 쓴다면서 닥치는 대로 채취해 갔다.
산내면 우체국·파출소·학교 마당에도 수성암이 감상용으로 쌓여 있다. 주민들은 처음 대량 반출을 한사코 말렸으나 억센 상혼에는 감당을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수성암이 고갈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주민반대불구 「채석강」화>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저질 수성암도 방파재 시공회사인 화성기업(대표 김동환)이 방파제 매립용으로「트럭」으로 쓸어 부어 흔적을 못 찾게 되었다고 주민들은 안타까와했다. 이 때문에 수성암을 밟고 채석강을 둘러보았던 관광객들도 디딤돌이 없어 발이 바닷물에 빠지기 때문에 이젠 채석강 구경을 절반도 못하고 돌아가기 일쑤.
이러한 채석강을 크게 손상해 놓은 것은 길이 14m, 높이 7.5m의 방파제와 선착장 2개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지난 72년12월14일 이 공사는 일부 어민들의 요청에 따라 전북도가 5백77만원의 예산으로 72년9월 착공한 것. 『유서 깊은 「채석강」을 「채석강」으로 만들 수 없다』며 지방유지들이 이 공사를 끈질기게 반대했으나 이에 아랑곳없이 어민들의 소득증대사업이라는 이유로 착공됐다. 이 공사의 구실은 격포리 주민의 15%밖에 안되는 『40가구 1백50명의 어민복지』를 위해서라는 것.
격포리 어선은 모두 20척 .최고 3t짜리 어선이 1척(수길호)뿐이고 나머지는 t수도 없는 소형어선. 격포리 이장 여앙규씨(45)는『선착장과 방파재 구축지역은 다른 곳에도 많은 터에 하필이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경승지에 선착장을 만들어 천연의 자원을 망가뜨리는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암 암벽 폭파 「호텔」짓고>
6년 전 고교시절에 수학여행 왔던 추억을 더듬으려고 약혼녀와 함께 채석강에 왔다는 이창구씨(24, 공군537부대·상병)는『망쳐진 모양을 보니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면서 발길을 되돌렸다.
방파제 매립 공사 때도 건설계약 조건에는 암석채취를 채석강에서 1㎞ 떨어진 사투봉에서 채취하도록 되어 있었는데도 담당 회사측이 이를 어겨 곽주용씨(36)등 주민들이 떼지어 몰려가 공사장에 드러눕는 등 편싸움까지 벌였으나 수성암으로 몽땅 매립했다고 주민들은 지금도 분개했다.
이밖에도 채석강과 바로 이웃한 변산 해수욕장에서도 일부 몰지각한 여관업자가 지난 70년5월 바닷가의 입석기암을「다이너마이트」로 수중 폭파, 암반 위에「호텔」을 지어 말썽이 일기도 했다. 주민들은『아무리 돈벌이도 좋고 소득증대사업도 좋지만 자손 대대로 두고두고 아껴야 할 자연의 경관을 깨뜨리면서까지 수입을 올려야 옳으냐』고 안타까와했다. <글 이원달 기자 사진 양영훈 기자(호남지방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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