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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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복지연금법이 드디어 통과되었다. 한편에서는 장한 일이라 하고, 또 한편에서는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양쪽이 다 이유는 있다.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백발의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걷지 않아도 되고, 매일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고 편안히 지낸다. 백성이 모두 굶지도 않고 평화롭게 윤택한 나날을 보낸다. 이런 따뜻한 정치를 하면서도 왕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노후의 살림에까지 신경을 쓰는 것을 『서경』에서는 「후생」이라 했다. 그리고 정치의 근본이 바로 후생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복지법이 생겼다는 것은 정치가 바로 잡혀 있다는 증거가 된다. 반가와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이것을 반대하는 쪽의 얘기는 또 다음과 같다.
비행기사고와 같은 경우에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는 흔히 「호프먼」방식을 따른다. 가령 피해를 본 사람이 그냥 몇 살까지 살았더라면 그 동안에 얼마나 벌었겠느냐는 식으로 따지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때에는 물론 단순계산법을 쓴다. 곧 피해자가 60세가 되었을 때에는 월급이 얼마나 오를 것인지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그냥 피해를 당했을 당시의 수입이 얼마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것을 돈벌 수 있을 때까지의 연수로 곱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물가와 국민소득 또는 생활수준은 그냥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오르게 마련이다.
미국무성의 발표에 의하면 미국민의 평균수입은 80년까지의 10년 사이에 36%나 오를 것이라 한다.
수입이 오르면 그만큼 생활수준도 오른다. 물가도 오르게 마련이다. 수입이 10년 사이에 36%오른다고 생활수준이 같은 비율로 오르지는 않는다.
지금까지의 정부발표가 모두 맞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높다. 그만큼 평균수입도 더 많이 늘어날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비례해서 좋아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물가도 함께 오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곧 오늘의 1만원이 10년 후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갖게 될는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산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지금의 추세대로만 나간다면 10분의1 이하로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이번 복지연금법은 항공회사를 위해 마련된 「호프먼」방식과 같은 단순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후생」의 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퇴직 후에 얼마를 받든지간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년 후의 퇴직생활에 연금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여기 비겨 퇴직할 때까지 꼬박꼬박 내야 할 돈의 부담은 너무도 무겁다는 것이 분명하다. 역시 「복지」는 「후생」이라는 옛말과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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