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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겨울에 어떡하다 저녁이 좀 늦어져서 장을 미처 물리기 전에 손님이 들이닥치면 참으로 난처해진다. 밖에서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된장찌개 냄새가 얼마나 코를 찌를까 생각하면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이기는 하지만 대단한 실례를 저지른 것 같아서 몇 번이고 변명을 하게 된다.
미국서 살다 돌아온 딸의 이야기가 된장찌개가 아무리 먹고 싶어도 좀처럼 끓여 먹지를 못했단다. 창을 아무리 꼭꼭 닫고 끓이더라도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온 「아파트」가 벌컥 뒤집힌다는 것이다.
전에 미국에 가 있던 L교수도 오징어를 좋아해서 집에서 부쳐 온 것을 방에 두고 먹다가 하숙집 주인에게 들켜서 모두 내다 버리고 다음부터는 「비닐」봉지에 넣은 것을 다시 유리병에 넣고 봉해서 자기 연구실 장 속에 넣어 두고 때때로 꺼내 먹곤 하였는데 재수 없이 그 날은 그 연구실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코를 킁킁대며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듯이 사방을 둘러보는데는 놀랐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해방 직후에 들어왔던 미군 병사가 노래기를 잡아서 코에다 대고 킁킁대며 좋아라고 냄새를 맡는 광경을 보고 질색을 한 일이 있다. 이쯤 되면 냄새에 대한 기호도 가지각색이어서 개인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민족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오래전에 영국에 가 있을 때인 도서관 사람과 같은 연구실에서 지낸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그 사람 집에 초대를 받아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식사가 다 끝나고 나서 후추씨 같은 것을 내오기에 멋도 모르고 한두알 입에 넣었다가 구역질이 나고 조금 전에 맛있게 먹은 「카레라이스」가 올라오려고 하여 혼이 난 일이 있다.
비행기가 없던 옛날 일본 관리가 「뉴질랜드」에 갈 때 큰 나무통에 「다꾸앙」을 잔뜩 가지고 달포나 넘어 지나서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땐 냄새가 심하게 났던 모양이어서 썩은 줄 알고 「프랑스」사람들이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서는 냄새 몹시 나는 사람으로 인도 사람과 한국 사람을 친다고 한다. 먹는 음식에 따라 그 냄새가 몸에 베개 마련이어서 인도 사람은 향료 냄새가 나고 한국 사람은 마늘 냄새가 나는 모양이다.
지난여름에 왔던 미국 「러거스」 대학의 「챙」교수는 냄새의 합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된장·고추장·간장·인삼 등의 독특한 냄새를 연구하여 맛을 개량해 보려고 왔었는데 그의 말로는 음식물의 독특한 냄새를 분석하여 그에 맞는 냄새를 합성한 것을 인공 음식물에 치면 우리들이 먹는 음식물과 영양이나 맛이 꼭 같고 값이 싼 음식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은 「코피」의 냄새만도 3백40가지나 된다고 하니 우선 냄새의 분류부터가 큰 문제다. 그런데 묘한 것은 너무 진한 냄새는 도리어 불쾌감을 주는 까닭에 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서 같은 종류의 냄새일지라도 무한정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냄새는 맛과 빛과 더불어 식감을 돋우는 3요소가 되는데 빛은 가장 과학적으로 잘 연구되었으나 맛과 냄새는 혀와 코를 통하여서만 판단되고 기기를 써서 수량적으로는 표시할 재간이 없다는데 큰 난점이 남아있다.
이것들도 빛과 같이 「스펙트럼」으로 표시할 수만 있다면 물리학적으로 다룰 수가 있겠는데 그리 간단치가 않다. 【권영대 <이박·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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