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으로 세금 낭비 막은 포항시 6급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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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집념이 도로로 편입된 땅의 ‘이중 보상’을 막아냈다.

 경북 포항시 죽도동 포항 오거리. 금싸라기 땅인 오거리 일부분(499㎡)이 2000년 소송에 휘말렸다.

 토지명의인의 상속인 A씨가 포항시가 부당하게 이득을 챙겼다며 도로 사용료를 달라는 요구였다. 포항시는 1969년 도로 건설 당시 보상 서류를 뒤졌지만 찾지 못해 패소, 사용료 2억원을 지급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토지 보상금도 다시 지급해야 할 판이었다.

 포항시의 시유재산찾기 김종국(56·6급·사진) 담당이 해결에 나섰다. 김 담당은 이미 보상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정리한 뒤 2006년 소유권이전등기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구고등법원은 결국 포항시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공시지가 21억원짜리 땅은 2007년 포항시 소유로 정리됐다.

 포항시가 2003년부터 포항 오거리처럼 도로로 편입된 개인명의 땅을 소송 등을 통해 소유권을 정리한 것은 지금까지 375건. 면적 14만8400여㎡에 달한다. 이게 다 소송으로 연결돼 보상금으로 지급됐다면 자그마치 1104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포항시가 전담팀을 설치한 것은 2006년. 1998년부터 시민들이 권익에 눈을 뜨면서 시가 토지를 무단으로 점유해 도로로 사용한다며 연간 50여 건씩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도로 예정지에 사유지가 들어갈 경우 보상은 선결 조건이다. 보상받지 않고 땅을 도로로 내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김 담당은 “그런데도 지금까지 도로에 개인명의가 남아 있는 것은 보상하고도 소유권 정리를 안 한 게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담당 공무원이 자리를 옮기거나 소유권자의 상속인이 많아 권리관계가 복잡해서 정리를 미룬 경우 등이다.

 포항시는 처음엔 소송에서 연패했다. 증거 자료인 보상 서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6년 동안 50여 건을 패소해 보상금 등으로 90억원을 지급해야 했다. 비상이 걸렸다. 김씨는 대학원에 다니며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파고들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판례를 연구했다. 해법도 마련했다. 직접 보상 자료는 없지만 남아 있는 정황자료를 활용하는 우회로를 찾았다. 포항시는 그때부터 도로고시 관보와, 보상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토지분할조서·지목변경조서 등을 정황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

 상황이 역전됐다. 포항시는 토지 소유권 분쟁에서 하나씩 승소하기 시작했다. 재판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도 만만찮았다. 김 담당은 “그때마다 세금 낭비를 방지한다는 각오로 자료를 챙겼다”고 말했다. 김 담당은 이 공로로 지난 연말 포항시 ‘올해의 공무원 대상’을 받았다.

 김 담당은 “이 문제는 포항시만이 아닌 서울·부산 등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골칫거리”라며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문의가 잇따른다”고 덧붙였다.

포항=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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