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축배 대신 정쟁 상징된 맥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태국의 반정부 시위대가 방콕의 주요 도로를 점거한 ‘셧다운 시위’를 벌이는 등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태국의 대표 맥주 ‘싱하’가 분열과 정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태국 최초의 맥주회사 분로드 브루어리(1933년 설립)가 생산하는 싱하는 태국 왕실이 인증한 매출 1위 맥주다. 하지만 이 회사의 상속녀이자 반정부세력의 핵심인 칫파스 비롬팍디(27·사진)의 부적절한 발언이 알려지면서 싱하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태국 언론에 따르면 칫파스는 지난달 “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시골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시골 사람들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가난한 벼농사 지역인 북동부 사람들의 분노가 거셌다. 지역민들은 소매점과 식당에서 싱하를 거부했다. 현지 소매업자들은 불매운동 때문에 맥주 소비가 증가하는 연말연시에도 싱하 매출은 줄었다고 했다.

 태국 북동부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집권기간 중 눈에 띄게 발전했다. 탁신 정책의 수혜를 입은 만큼 부정부패로 쫓겨난 탁신 전 총리를 사면하려는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총리를 지지한다. 반면 칫파스가 속한 제1야당인 민주당은 부유한 귀족과 보수세력의 집합체다.

 칫파스의 발언이 “부잣집에서 자라서 뭘 아느냐”는 분노를 사는 이유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이른바 ‘레드 셔츠’의 북동부 지역 대표인 콴차이 프라이파나는 “불매운동은 반정부 시위와 관련된 기업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잘못된 정치적 선택을 한 사업가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SNS를 통해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칫파스가 직접 해명에 나섰다. “(시골 사람의) 권리를 제한하자는 뜻은 아니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분로드 브루어리 측은 사업에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비롬팍디 가문은 칫파스를 가문에서 내쫓았다. 칫파스의 아버지는 성명에서 “가업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딸의 성(姓)을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칫파스는 어머니의 결혼 전 성 크리다콘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심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맥주 맛은 변치 않았지만 마음이 변했다”며 더 이상 싱하를 마시지 않겠다는 것이다.

홍주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